[농민칼럼] 이웃이 있으면 마을은 사라지지 않는다

  • 입력 2017.01.08 12:09
  • 수정 2017.01.09 11:15
  • 기자명 김훈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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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경남 거창)]

김훈규(경남 거창)

2002년 월드컵이 있던 해, 눈이 엄청나게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속옷이 든 작은 가방 하나, 현금 10만원 달랑 들고 거창으로 들어왔습니다. 1994년부터 4년 동안 농활 때 해마다 들어왔던 곳이었는데 아예 정착을 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만 15년이 됩니다. 늘어난 것이 딱히 뭐가 있겠냐마는, 빚이 얼마나 늘었냐고 물으면 할 말은 많습니다. 다행히 딸 둘, 아들 하나를 비롯해 딸린 식구가 넷이나 생겼으니 농촌 정착 15년의 평가점수는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와 인연으로 거창으로 들어온 지인과 그 가족의 수만 합쳐도 20명은 족히 넘을 듯합니다. 그들이 또 거창으로 귀농을 안내한 지인들까지 이래저래 합치면 두 배는 넘겠지요. 우리 고을 군수님께 거창군 인구증가 공로상 하나라도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추천해 주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거창에 들어올 당시에는 지자체에서도 귀농귀촌 정책이라는 것도 마땅히 없었고,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빈집과 농사지을 빈 땅이 제법 널려 있었으며, 정착해서 살아보고자 찾아가는 마을마다 주민들의 과분한 환영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혼자서 어느 마을에 정착을 하고 소를 키우다가, 2005년 겨울 WTO 6차 각료회의 저지 투쟁을 위한 1,300여명의 투쟁단에 섞여 열흘 이상 홍콩으로 나갔을 때, 그 추운 기간 내내 제가 키우던 소를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며 심지어 매일 물을 데워서 챙겨주신 이웃 할머니의 정성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구 2,000명 남짓 면단위의 작은 마을에 살 때, 부산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동네 주민 대부분이 관광버스를 타고 축하를 해주러 오셨고,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마을에서 12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면서 동네 할매들이 직접 백일상을 차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웃4촌’ 통해 농촌마을 살리는 정책 이어져야

얼마 전 정부의 지방소멸위험지수에서 곧 사라질 읍면동 상위 10위 안에 1위인 경북 의성군 신평면(인구 811명 / 2016년 7월 기준)을 비롯해서 우리 지역의 가북면이 7위에 등록된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마을과 주민들이 다 없어지기야 하겠냐마는 행정적인 지표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멸위험지역은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없으면 30년 후 지역이 사라질 위험의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전국 읍면동 중 3분의1이 넘는 1,383곳이 위험지역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와중에 정부와 지자체는 ‘떠나지 않는 농촌’은 다소 포기하고 ‘돌아오는 농촌’으로 정책의 방향을 선회라도 한 듯 귀농귀촌정책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이에 거창군에만 4,000명 이상의 귀농귀촌인이 있습니다. 작은 면단위 인구의 3배가 되는 숫자입니다. 지역으로 보면 대단히 강력하고 의미 있는 상황입니다. 아울러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지역과 마을의 향배를 가를 주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지역과 마을을 유지하고 지키는 힘의 근원이 주민이고 아이들인데, 그 큰 버팀목이 바로 귀농귀촌인이 아니고서는 힘들다는 것으로 정부든 주민들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귀농귀촌 정책의 주요방향이 특정 능력자(?)의 독보적인 농업 고소득 창출로 성공하는 사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민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서로 어울려 ‘행복’하고 ‘지속적’으로 지역과 마을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는 각계의 의견이 이어집니다. 농업의 2차, 3차, 6차 산업도 좋지만 새해에는 부디 ‘이웃4촌’이 더 좋은 농촌마을을 만들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농민칼럼 첫번째 필자 김훈규씨는 15년 전 농촌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10년간 한우를 키웠다. 지금은 거창군농업회의소에서 농업농촌 살리기에 힘을 모으며 민관거버넌스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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