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윤석원의 농사일기]
며칠 전 강현면 소재지 육성사업을 위해 자문을 맡고 있다는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현면의 강선리, 물치리, 정암리 등 주민들께 강의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로 농업경제 전반이나 농업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강의했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께는 말씀드릴 것이 별로 없다고 사양했다. 그랬더니 실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강선리 이장님께서 추천했기 때문에 전화 드린다는 것이었다.
순간 많이 주저했다. 왜냐하면 내가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교육은 주로 마케팅 기법, SNS 활용법, 토양학, 재배학, 유기농자재 만드는 법 등 매우 실용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기술, 경영 중심의 교육이었고 수강생 농민들의 반응도 비교적 높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것은 지금까지 농민들을 상대로 한 나의 강의는 조금은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내용들이라서 크게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강의는 주로 정책과 세계경제 등이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만 대다수 현장 농민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큰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농민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앞으로는 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강의 부탁이 온 것이다. 그것도 1년간 자주 뵙던 마을 분들께 강의를 하라고 하니 크게 망설여졌다. 마을 분들은 아마도 칠순을 넘기신 연세 높으신 어른들이 대부분이고 연로하신 어머님 같은 분들인 것을 뻔히 아는데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장님께서 특별히 추천했고 모처럼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 판단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강의 날에 마을회관으로 일찍 갔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마을회관의 넓은 방에 벽을 기대고 앉아 계셨고 젊은 분들만 가운데 듬성듬성 앉아 계셨다. 한 40여분 되는 것 같았다. 딱딱하고 골치 아픈 농업정책 얘기 보다는 나의 귀농·귀촌 이야기며 이장님을 비롯한 주민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설악산과 동해바다를 함께 가지고 있는 양양이 왜 좋은 곳인지, 앞으로 어떻게 우리 지역을 지켜 나갈 것인지, 후계인력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가능하면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을 내어 놓고 쉽게 설명해 드렸다.
강의가 끝난 후 이장님께서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마웠고 당신들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도 짚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연세 많으신 어머님 한분이 다가오시더니 허리 아파 죽을 뻔 했다며 좀 빨리 끝내지 않았다고 핀잔하셨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저 어른들 앞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6차 산업을 논하고, 강소농을 실천하면 한국 농업과 농촌이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농업·농촌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소수보다는 다수를 위한 농정이 적극 시행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