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산업기반과 식량주권

  • 입력 2017.01.06 10:20
  • 수정 2017.01.06 10:55
  • 기자명 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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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요즘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등 나라가 많이 어지럽습니다. 이런 나라의 혼란은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AI 의심 신고가 최초 접수된 지난해 11월 이후, 방역을 위한 살처분은 이미 국내 사육규모 20%에 육박하는 3,000만 마리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유행하는 H5N6 유전자형의 AI는 중국에서 사람에게 감염됐고, 50% 이상의 치사율을 보였습니다.

최근 국내 경기도 포천에서 고양이 폐사체로부터 AI 바이러스 감염이 확진됐습니다. 고양이의 경우 죽은 가금류를 먹어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몇 천만 마리의 가금류 살처분에 이어 방역의 이름으로 고양이에 대한 대대적인 살생이 발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AI 바이러스가 다른 포유동물을 경유해 사람에게 다시 오는 것은 그리 짧은 시간 속에 일어나지는 않으니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허나 기상천외한 국정농단 사태에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된 상황이고, 또 대한민국 인구의 대부분은 도시에 살고 있기에 AI 상황의 심각성은 대부분 단지 TV나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살처분 영상을 통해 막연히 느끼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산란계 중심의 발생과 장기화된 살처분으로 도시인들은 급등하는 달걀 가격을 접하게 됩니다. 이제 AI 상황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느낍니다. 나와 상관없이 TV 속 끔찍한 영상에 불과했던 것이 결코 먼 곳의 일이 아니라 내 문제가 됩니다. 물론 정부는 비싼 달걀 가격을 보면서 긴급 해외수입을 신속히 결정했고, 달걀 가격 안정은 조만간 이뤄질 것입니다. 또 AI 상황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돼 가라앉을 것이고요.

이제 다시 평온하고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TV 속은 일상 뉴스로 채워질 것이고, 많은 이들은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주목하면서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 있다고 되뇔 것입니다. 정부 당국도 적당한 원인 분석과 대책 제시로 뭔가 노력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보여줄 것이고요.

그러나 저에게 이번 사태는 끔찍한 미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보입니다. AI로 국내 양계산업의 생산 기반이 흔들리니 우리는 즉시 해외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FTA나 TPP 등으로 당장의 수출 증대를 위해 국내 농축산물의 생산 기반이 무너져감은 잘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조만간 닥칠 식량전쟁을 염두에 두고, 최소한의 자국 먹거리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처럼 국가차원에서 대응한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국적 식량기업은 지구상의 유전자원을 확보한 채, GMO 등을 통해 이웃국가의 식량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체제를 작동시키고 있습니다. AI 사태는 단지 축산 농가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 더 나아가 우리들의 미래세대가 살아야 할 이 땅의 문제 상황을 말해줍니다.

정치경제는 물론 식량마저 해외에 의존할 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렇듯 AI 사태와 달걀 값이라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현 AI 사태란 단지 TV 속 상황이나 방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문제이자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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