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재앙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꿈꾸다

[전문가 진단] 최세현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산청 간디유정란농장 농장지기)

  • 입력 2017.01.01 10:42
  • 수정 2017.01.01 10:46
  • 기자명 최세현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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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현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산청 간디유정란농장 농장지기)

17년 전, 11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마감하고 이곳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작은 통나무집을 손수 지어 둥지를 틀고는 작은 유정란 농장을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1,000 수가 채 되지 않는 구멍가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1,000수도 되지 않는 닭을 키워 어떻게 생활하고 애들 공부 시켰냐고? 우리 부부가 하루 반나절만 일하고도 빚지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건 소농 직거래와 닭의 입장에서 닭을 키운다는 게 그 해답이라고 말한다.

철새들이 주범이라고?

AI가 전국적으로 발병하고 있는 이 시기에 축산 당국은 조류독감의 주범이라며 죄 없는 철새들에게만 더 이상 누명 씌우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농장에서 AI가 발생했지만 발병경로를 명확히 밝힌 곳은 한 곳도 없다. 철새가 AI 전파 원인이라면 정말 답이 없다. 그 많은 철새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두 번에 걸친 가금류와 달걀 그리고 종사자들의 이동금지 조치 같은 탁상행정도 그만 둬야 한다. 실제로 우리 같은 소규모 농장의 경우, 일선 시 군이나 면 담당자로부터 직접적으로 이동금지 조치 연락을 받지도 못했다. 다만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형식적 문자 통보가 연락의 전부였다. 소규모 농장들의 경우 농장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지 실정이다.

이제 감기처럼 일 년 내내 상존하고 있는 AI 바이러스를 어떻게 소독이나 방역만으로 막아낼 수 있겠는가. 닭이나 오리 스스로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건강하게 키우는 것 말고는 조류독감의 확산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닭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 공기, 햇빛이 건강을 좌우한다. 공장식 밀식사육이 아닌 동물복지를 고려해서 키우는 것만이 AI라는 환경의 역습을 막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 농장의 경우, 가장 확실한 방역 대책은 천창을 통해 닭장 안으로 하루 내내 비추는 햇볕과 닭들이 흙을 파헤치며 하는 모래목욕 그리고 원활한 자연환기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채광과 환기가 닭들의 면역력을 키우는 일등공신임이 분명하다.

경남 산청군 간디유정란농장의 닭장 창을 통해 햇빛이 비추고 환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최세현 제공

동물복지농장의 불편한 진실

하지만 얼마 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 닭들도 AI에 감염돼 살처분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었다. 이는 AI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농장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당국이 동물복지에 얼마나 문외한인지에 대해서 밝히고 싶은 것이다.

먼저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알 낳은 닭의 경우, 최소 4,000수 이상을 키워야 신청이 가능하다. 그래서 1,000수 정도를 키우는 나는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 동물복지농장의 경우 평생 햇빛 한 번 볼 수 없는 무창계사에 강제조명을 해도 인증이 가능하다. 이는 닭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물, 공기, 햇볕임을 간과한 것이다. 동물복지는 닭을 알 낳는 기계로 보지 않고 닭의 입장에서 닭을 대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정부 당국이 동물복지에 대해서 얼마나 탁상행정으로 처리하는지 알 수가 있다. 게다가 무항생제 축산물 품질인증의 경우, 케이지식 공장식 축사라도 사료만 무항생제를 먹이면 품질인증을 해준다는 사실에서 우리나라 동물복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발 정부 당국은 진정한 동물복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달걀 가격 결정은

AI로 인해 달걀 값이 인상된다는 언론 보도에 우리 직거래 회원들이 먼저 묻는다. 달걀 값 안 올리냐고. 난 대답한다. 올 초에 올렸고 원가 인상 요인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 올릴 계획은 없다고. 농산물 가격은 농민이 결정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 원가에 농민이 행복하게 살 만큼의 이윤이 더해져서 결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달걀 값은 2년에 한 번 정도 꼬박꼬박 올렸다. 17년 동안 한 번도 내린 적은 없다. 달걀 10개 들이 한 통 값이 처음 2,200원에서 현재 5,000원까지 올랐다. 우리 회원들의 기꺼운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근본적인 해결책은?

요즘은 하루하루가 정말 살얼음판 걷는 심정이다. 우리 농장만 방역을 철저히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산농가 뿐 아니라 공무원에 군인까지 투입되어 AI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전파 경로 또한 오리무중이니 실체 없는 적과 싸우는 격이다.

일부에선 사육 환경 개선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축산물의 유통 구조가 먼저 개선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들처럼 직거래까지는 어렵겠지만 대기업 하청 방식에서 탈피해 유통 단계를 단순화시켜 물류 거품이 빠지고 축산농가에 순수익이 더 많이 돌아가게 될 때 사육 환경이 개선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 당국에서도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산란계의 경우, 유럽의 여러 국가들처럼 케이지 방식의 축사 신축을 금하고 평사 방식의 축사만을 허가해주는 일종의 혁신이 있어야 하고 기존의 케이지식 축사도 점차 없애 나가는 정책을 펼칠 때 일 년 내내 상존하고 있는 AI 바이러스를 닭이나 오리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결국은 진정한 동물 복지 실현과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이 AI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까. 우리 소규모 직거래 유정란 농장들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제 값 받고 농산물을 팔아야 농민이 행복하고 그래야 닭들이 건강해지고 그 닭들이 낳는 달걀 또한 건강한 먹거리가 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 아닌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만이 이 재앙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축산업의 기본 출발점임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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