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노련한’ 트럼프, 양국간 협상 공략한다

국내외 농업정세 / 이해영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

  • 입력 2016.12.31 18:10
  • 수정 2019.05.01 16:0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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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이변이었다. 신자유주의 피해자들이 대자본가에 표를 몰아줬다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트럼프가 주창한 미국 보호주의 통상정책은 한국에 어떤 파고를 몰고 올 것인가.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해 어떤식으로든 변화를 강제 받을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 제조업 또한 위기로 트럼프식 보호주의는 더 집요해진다”고 내다봤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통상정책은 어떤 움직임이 예상되나.

트럼프의 당선은 지난 2007, 2008년 금융위기로 몰락한 미국 백인 중산층들의 변화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던 힐러리의 완패가 만든 기형적 결과물이다. 미 중산층의 저항에너지를 ‘극우’가 차지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 이명박·박근혜 당선도 흡사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미 대선 결과는 향후 세계화·신자유주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맹위를 떨쳤던 세계화 흐름이 소멸되진 않지만 다른 형태로 강요받을 것으로 보인다. 백인 중산층의 지지로 당선된 트럼프가 어찌됐든 그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구체화 하느냐가 트럼프 통상정책의 맥이 될 것이다.

TPP에 대한 전망과 우리나라 통상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미 대선 전에 우리나라 통상자문위원회가 있었다. 통상관료들은 힐러리가 당선될 거란 확신 하에 TPP 등을 보고했다. 사실 TPP가 우리나라에 플러스 영향일지 마이너스 영향일지 예측할 순 없다. 오직 상대가 미국이란 게 결정적일 뿐이다. TPP는 경제적 이익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에 의한 추진 아닌가. 그런데 일본과의 관계에선 입장이 좀 다르다. TPP는 미-일간 FTA이자 한-일간 FTA도 된다. 미국이 빠지는 TPP를 국내 대기업들이 과연 찬성할까. 국내 자동차기업들만 봐도 유럽에선 적자, 미국에서 1%대의 수익, 일본에선 영향력 제로인 가운데 국내점유율로나 수익을 보완하는 구조다. 만약 한-일 FTA인 TPP에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가입한다 한들, 자동차기업은 되레 일본차의 역공을 당할 위험이 더 커진다. 우리 정부가 농축산업계의 TPP 저항엔 꿈쩍 않지만 대기업의 저항을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가 기업들에 뭔가 내준다면 또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의 TPP 탈퇴는 대세가 될 것 같다는 점이고, 일본은 애매하게 됐고 한국은 한숨 돌리게 됐다.

TPP가 수면아래 가라앉는다면 우리에겐 ‘역내 포괄적 경제협력(RCEP)’과 ‘한-중-일 FTA’가 남는다. RCEP은 TPP보다 개방수준이 낮아 부담이 덜하다. 한-중-일 FTA는 계산이 복잡해지는 면이 있다. 중국과 손잡아야 할 게 있고, 일본과 손잡아야 할 게 있어서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혼동하는 게 있다. 트럼프가 모든 FTA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다자간 FTA인 TPP나 나프타(NAFTA) 등에 반기를 들었을 뿐이다. 트럼프는 ‘노련한 장사꾼’ 혹은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인물이다. FTA 협상구도에서 미국이 가장 유리한 게 일대일 즉 양자간 FTA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하면 한-미 FTA 등을 다시 세팅하려 들 것이다.

한-칠레 FTA 개선협상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철저히 친기업적인 특히 친재벌적인 정책이었다. 수없이 많은 비판에도 이런 정책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특히 재벌 위주 신자유주의 통상정책은 친제조업, 반농축수산업을 의미한다. 하지만 친제조업이라 해도 자동차, IT 등 거대독점재벌 위주일 뿐 중소기업은 혜택이 없다. FTA를 체결할 때마다 우리 정부는 경제효과를 광고해 왔다. 하지만 그런 경제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허황된 수치를 흔들며 고용창출 광고를 했지만 실체가 없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했고 수많은 FTA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고 이는 다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FTA 경제효과는 과장된 것일 뿐만 아니라, 대국민 사기극으로 봐야 한다. FTA를 할 때 마다 우리 정부는 농축수산업에서 ‘곶감 빼먹듯’ 혹은 ‘쌈짓돈’처럼 희생을 강요해 왔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국면 시기다. 안타까운 것은 통상관료의 대응이란 게 관료주의와 보신주의 그 이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통상정책으로 국민들의 삶이 더욱 어려움에 처했다. 200만 촛불집회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피즘이나 그 기저에는 세계화 루저들의 반발이 깔려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한국의 양극화를 가속화시켰고 이는 도처에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치명적인 것은 양극화로 인한 성장동력의 고갈이다. 일자리 또한 말라가고 있다. 지금까지 그 저항은 산발적이고 개별적이며 따라서 주변화 돼 왔었지만, 200만 촛불에서 보듯 바닥에 깔린 신자유주의 저항과 반대흐름이 정치적 이슈를 매개로 마침내 응집해 폭발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통상정책은 어떤 형태가 돼야 하나. 정부와 국민 그리고 농민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주의는 이론적으로도 파산했을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그 효과를 의심받고 있다. 또 FTA가 확산될수록 그 효과는 줄어든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FTA의 진정한 목표는 관세철폐로 인한 소비자후생 따위가 아니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자본의 세계화에 있다. 결국 금융자본의 자유화와 세계화가 목표지점이다. 이미 오래전 케인즈가 경고했듯 고삐 풀린 금융자본이 가져 올 미래는 잿빛 디스토피아다. ‘트럼프’라는 다분히 희극적 인물의 등장은 자유무역의 폭주에 시달린 우리에겐 일종의 ‘숨 쉴 틈’이다. 이제 무역의 패러다임을 새로운 공정무역 나아가 정의로운 무역으로 갈아탈 때다. 오직 가격요인만을 내세운 농축수산품의 자유무역부터 제동을 걸어야 한다. 문화부문에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이란 게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각국의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 문화는 교역(trade)이 아니라 교류(communication)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그 기반이다. 이처럼 먹거리 분야도 글로벌 규제망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처럼 기후변화와 통상에 대한 인식도 제고돼야 한다. 어쩌면 ‘개방된 보호주의’라고 할까, 그런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필요하다. ‘만국의 농민들이 단결해’ 문화다양성협약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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