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곁에서 역사를 보다

송년특집 기자좌담회
한국농정신문 기자들이 돌아본 2016년

  • 입력 2016.12.24 00:23
  • 수정 2016.12.26 11:03
  • 기자명 배정은·김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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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을 유지하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객관적인 문장을 적어야했지만 쉽지 않았다. 숨 가쁜 투쟁을 이어가는 농민들의 피땀이 맺힌 분노와 열정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자임을 때로는 감사하게, 때로는 무기력하게 느꼈다. 냉정과 열정 사이, 한국농정신문 기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좌장 심증식 편집국장
정리 김혜원·배정은 기자

 

본사 기자들이 지난 21일 신문사 회의실에서 고 백남기 농민부터 전봉준투쟁단까지 2016년을 되돌아보는 좌담회를 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홍기원, 권순창, 강선일, 배정은, 박경철, 한우준, 김은경, 원재정, 김혜원 기자.


심증식 국장: 박근혜정권 초기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노동법 개악, 국정교과서, 쌀 개방, 쌀값폭락 등 정권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열망으로 지난해 민중총궐기가 기획됐지만 정부는 폭력시위로 규정했고, 경찰의 완력이 백 농민을 살해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기자들의 소회를 들어보고 싶다.

김은경 기자: 한 농민의 목숨을 놓고 이 나라가 어디까지 패륜적일 수 있는지를, 그 끝을 보여준 사건이다. 300여일이 되도록 수사를 하지 않아서 청문회 실시를 위해 야당당사 점거단식농성까지 했다.  상황은 언제나 최악이었지만 농민들은 최선을 다 하셨다. 정의, 평화, 생명, 양심, 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말들을 호명하신 분이 바로 백남기 농민이다. 농민운동사 뿐만 아니라 현대사에서도 이 투쟁은 재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기원 기자: 백민주화씨를 인터뷰했던 일이 가장 힘들었다. 기자로서의 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의연함을 잃지 않고 민중과 농민 모두를 믿어준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농민들에게는 이렇게 또 하나의 장기 투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잊힐 가능성도 유념해야 한다.

권순창 기자: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다. 국민이 국가권력에 의해 쓰러졌는데 한마디 사과도 않고, 이유 없이 부검을 시도하고 사망진단서까지 조작할 수 있나. 우리사회가 정상이라면 이 사건의 책임자가 아직까지 처벌받지 않을 수 있나. 이는 사회가 정상과 너무나 멀어졌음을, 민주주의가 퇴보했음을 보여준다. 기자들에게는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던 소재였다.

강선일 기자: 백남기 농민의 개인적인 삶도 조명돼야한다. 그는 우리밀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밀 농사를 짓고, 한평생을 산간오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리밀 종자를 찾았다. 수입농산물로 인해 농업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우리밀 종자를 지키고 우리 농업기반을 수호하고자 했다.

배정은 기자: 지난 5월 전농 경북도연맹 농민들의 1인 시위와 백남기 농민 댁에서 열린 밀밭걷기 행사 등 소위 ‘현장’은 주류 언론 매체의 묘사와는 많이 달랐다. 다행히 부검투쟁 때 일부 언론들의 문장이 조금 개선됐다. 아직은 힘든 싸움의 연속이지만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 끝내는 가능할 것이라 기대한다.

박경철 기자: 경찰버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신 백남기 농민의 모습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모습에는 민주화·농민 운동을 해온 삶의 궤적이 담겨있다. 단식투쟁, 삭발식, 트랙터 투쟁으로 이어진 것은 그가 다른 농민의 가슴을 끓게 해서가 아닐까. 정부의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모습에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한우준 기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이명박 정부 때였다. 세금을 낭비해도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가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답답했는데, 기자로서 직접 마주한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힘들게 드러낸 부정부패와 사건의 책임자 처벌이 조속히 이뤄지길 빈다.

원재정 기자: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던 시각, 우리 기자들이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비정상인줄 당시에는 몰랐다. 백 농민의 상경은 노동의 대가, 쌀값을 정당하게 받게 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쌀값문제는 진전이 없고, 농정은 농민을 더 어렵게 몰아만 가서 답답하다.

심: 현 시국에서 농민들의 역할과 트랙터 투쟁을 지켜본 소감은 어땠나.

박: 백남기 사건 이후 농민의 하나된 투쟁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시위로 불리는 200만 촛불 혁명도 있을 수 있었다. 농사일 자체도 고된데, 1년 넘는 시간동안 투쟁을 쉬지 않은 농민들의 저력에 느낀 바가 많다. 사회 이목이 집중됐지만 실질적인 농정 변화로 이어진 것은 없기에 안타깝다.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때에 농민답게, 전봉준의 후예답게 투쟁하리라 믿는다.

홍: 처음 전봉준투쟁단의 존재를 안 때가 해남서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다. 이래서 농사는 언제 짓나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고, 그 시작이 참 소박했지만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던 장면이 기억난다. 우리 농민들이 이렇게까지 정세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로써 지도부의 추진력과 농민들의 열혈 의지를 국민 모두가 알게 됐다.

원: 맞다. 그때 뭔가 바뀔 수도 있지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상황에서, 농업에서 손 놓은 정부와 그래도 살아야하는 농민의 자구책이 합쳐져 ‘전봉준투쟁단’이라는 꽃이 피었다. 자신의 생업을 돌보지 못한 채 원정 투쟁에 나선 농민의 움직임이 농정 개편이라는 성과로 이어졌으면 한다.

배: 국가 기관들이 각각 담당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농민들 나아가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농민의 소리에 이렇게까지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농민의 바람이 국민과 공감을 형성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아 기뻤다.

강: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힘들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처절하게 싸워야하는 농민들은 특히 더 힘든 삶을 산다. 그럼에도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지키자고 빈소를 떠나지 않는 농민들을 봤을 때, 맨몸으로 정세를 돌파하는 그 굳건한 마음을 다시 배웠다.

김: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전국 각 거점을 훑으며 근 2주가 걸리는 상경을 한 전봉준투쟁단을 보며 농민의 저력을 봤다. 농가부채가 농민으로서는 가장 큰 사안이지만, 선두에는 언제나 ‘박근혜 퇴진’ 깃발을 꽂고 국민적 요구를 걸었던 트랙터 투쟁은 전봉준의 뜻을 그대로 지켰다.

한: 행진 뒤에 대장 트랙터에 기름을 넣는 모습을 보며, 방송 매체에서 말한 시위와는 다른 ‘진짜 투쟁’을 목격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국민들이 2~3주차 촛불집회로 지친 시점에서 농민들이 몰고 올라온 트랙터는 촛불 민심에 시각적인 통쾌함과 활력이 됐다.

권: 촛불정국은 늘 혼자였던 외로운 싸움을 하는 농민들에게 혼자가 아닌 상황을 만들어 줬다. 특히 트랙터 진격의 순간에는 농민이 시위를 주도하는 주인공임이 틀림없었다. 마무리 집회로서 세종대로를 지나는 전봉준투쟁단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개선행진을 했다.

심: 304명을 죽인 세월호 학살이나 촌로를 살수차로 조준해 죽인 백남기 사건을 보면서 사회 전반에 내려앉은 생명 경시 분위기를 느낀 한해였다. 이런 분위기와 집회를 불온시하는 사회적 편견에도 우리 농민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희망이 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심: 2016년을 마감하는 개인적 소회와 내년을 향한 다짐은?

권: 농민들의 참담한 현실이 지속되기에 투쟁 또한 계속돼야 했다. 비농업계는 이들의 투쟁을 두고 의례적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정의로운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라의 현실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중 농민이 가장 앞서 나온 모습을 잊지 못한다. 새해엔 더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농민의 삶을 섬세하게 짚어내고, 농민의 진의를 널리 전파하겠다. 

홍: 전봉준투쟁단은 기획단계부터 촛불의 성과가 일부 정치인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지 못하게 막으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 판단은 정확했고, 트랙터 행진단의 마무리 방점이 있기에 그 누구도 아닌 ‘민중’이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렸다는 역사가 쓰일 것이라 본다. 근래 조류인플루엔자도 도시민과 비농가는 농가의 잘못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어, 그런 오해와 불신을 풀어내는 것이 기자의 숙제이고 그 숙제를 잘 해낼 생각이다.

강: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겪으면서 농민과 노동자의 삶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의 움직임을 보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 희망이 생긴 시점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기에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새해에는 배우고 노력해서 1g이라도 더 농민에게 보탬이 되는 기사를 쓰겠다.

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해였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의 현실화, 정의롭고 현명한 민중의 면모를 본 시간이었다. 축산담당 기자로서 축산농가의 고충을 이해하고 올바른 정보를 잘 전달할 것이고 국민으로선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보탬이 되겠다.

박: 탄핵이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을 떨쳐내는 시작점이라는 전농 김영호 의장의 어느 인터뷰처럼, 탄핵 자체가 사회·경제·정치적 지배구조를 바꾸지는 않는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정치를 바꿔내야 곧 농산물을 제값 받는 세상이 온다. 그러기 위해 우리 신문도 농업전문지에 그치지 않고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

한: 우리 사회는 이명박을 겪고, 같은 부류의 인물이 또다시 대통령에 오르는 경험을 했다. 현 정권의 임기가 무사히 끝나기 전에 옳은 선택을 하는 우리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앞으로 농민단체 담당기자로서 규모가 큰 농민단체 뿐만 아니라 농업 내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개인과 작은 단체의 목소리도 찾아 듣고 싶다. 

김: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구심점은 농민들이다. 농민의 저력에 항상 존경을 느끼면서도 기사에 담아내지 못할 때 언제나 아쉬웠다. 올 한해 농민가 가사 그대로 사셨고, 그래서 농민 여러분을 존경받아야 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농민운동사는 앞으로 계속 찾아보고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됐다.

원: 올해 신문사 시무식을 1월 4일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백남기 선생 옆에서 했었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는 지금, 표면적으로는 슬프지만 내적으로는 농민의 속마음을 많이 보고 느낀 해라서 맥없이 힘들지만은 않다. 올 한해 한국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이 빗발쳤지만 한국농정신문은 내년에 더 쉽고 깊게 농업현안을 다뤄 ‘다르다’는 평가를 꼭 듣고 싶다.

심: 노쇠한 농민들, 늙은 동지들을 집회현장에서 만난다. 이분들이 1990년 전농 결성부터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투쟁했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민중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는 결과를 본다. 새해에는 우리 신문도 나름의 농민운동을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매체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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