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시골극장 ①] 「활동사진」이 들어왔다!

  • 입력 2016.12.24 00:03
  • 수정 2016.12.24 00:4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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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내가 아직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이었던, 1960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슬슬 마을 회관 쪽으로 나갔는데 그날따라 온 동네 청소년들이 모두 나와서 북적거렸다. 아, 오늘 저녁에 4H인가 뭣인가 그런 모임이 있나, 그랬다. 그런데 육촌인 상철이 형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아랫말에 활동사진 들어왔다는디 너도 그거 구경 갈라고 나왔제?”
 “활동사진이 뭣인디?”
 “이런 촌놈. 암말 말고 너는 오늘 이 성님만 따라온나. 내가 구경시켜 줄 것잉께.”
 뭔지는 몰라도 그럴 듯한 구경거리가 생긴 모양이었다. 두어 달 전에는 상철이 형을 따라 국민학교에 가서 마술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빈 손바닥에서 순식간에 꽃이 피어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던 ‘다후다’ 보자기에서 비둘기가 불거져 나와 날아오르기도 했다. 볼수록 신기했다. 이어서 마술사가 작은 창호지 조각에다 성냥불을 켜서 붙이더니, 다 탈 즈음에 두 손으로 비벼서 껐나 싶었는데 “수리수리 마하수리, 짠!” 하면서 손바닥에서 5원짜리 종이돈 한 장을 꺼내 펴보였다. 가슴이 떨렸다. 나는 안방 시렁에 올려놓았던, 가오리연을 만들고 남은 창호지를 떠올렸다. 당장에 집에 가서 고놈을 조각조각 잘라 돈을 만들 생각을 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맨 나중에 그 마술사가, 마술 한 가지를 가르쳐주겠다면서, 하필이면 창호지 조각을 태워 돈을 만들었던 그 마술의 비밀을 설명했다. 
 “자, 이거 보세요. 5원짜리 지폐를 작게 접어서 이렇게 미리 성냥갑 속에 감춰두었다가….”
 속았구나, 생각하니 맥이 빠졌다. 다음부턴 그 따위 거짓말투성이의 마술놀음은 절대 구경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활동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는 가설극장은 우리가 ‘갱번’이라 부르던, 아랫마을의 바닷가 갯돌 밭에 마련돼 있었다. 갱번에 대형천막이 세워져 있었고, 저만치 한 쪽에서 발전기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속속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하고 종석이는 얼떨결에 빈손으로 따라나섰으니 헛걸음을 한 것이었다. 
 “일루 와 봐.”
 상철이 형이 종석이와 나를 데리고 천막을 반 바퀴쯤 돌면서 관찰을 하더니, 바다 쪽 휘장 바깥의 어느 지점쯤에 우리 둘을 앉혔다. 즉석에서 우리는 신호를 정하여 공유하였다. 
 드디어 상영이 시작된 모양으로, 차르르르…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이른바 ‘벙어리 활동사진(무성영화)’이었기 때문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바깥에 있는 우리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도회지에 가면 극장 전속의 ‘변사’가 있어서 해설을 해주었으나, 그 섬마을까지 변사가 따라왔을 리가 없었다. 
 우리처럼 빈손으로 와서 천막입구를 어슬렁거리는 꼬마들이 꽤 여럿이었지만, 그 천막극장의 문지기는 공짜 입장은 어림도 없다면서 눈을 부라렸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천막 휘장 밖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드디어 안쪽에서 ‘짝, 짝, 짝!’ 세 번 갯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신호로 종석이와 나는 천막 휘장의 가장자리를 눌러놓은 갯돌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었다. 한참을 걷어내자 가장자리가 나타났다. 우리는 가만히 휘장을 들어올렸다. 안으로 들어갈 만한 ‘개구멍’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씨익, 한 번 웃고 나서 동시에 천막 안쪽으로 빡빡머리를 들이밀었다. 바로 그 때,
 “요런 쥐새끼 같은 녀석들!”
 출입구를 지키던 그 우락부락한 남자가 우리들의 ‘민둥 대가리’를 무지막지하게 쥐어박았다. 머리를 빼내어 다시 바다 쪽으로 돌아앉아 있자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한참이 더 지난 뒤에 바깥을 어슬렁거리던 우리들에게도 입장이 허용되었다. 어쨌든 그날 밤, 나는 난생처음으로 ‘움직이는 사진’을 보았다. 그러나 말 타고 달리는 모습 몇 장면을 구경하는 둥 마는 둥 했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마술을 보고 속았다고 느꼈던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를 보니, 보름달이 수평선 위로 서너 뼘이나 솟아 있었다. 달빛이 부서지는 바다에서 물너울이 굼실굼실 밀려오는 그 모습이, 천막 안에서 잠깐 보았던 칙칙한 사진조각들 보다 몇 배나 더 실감나는 활동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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