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넋이 빠진 국민

  • 입력 2016.12.17 12:34
  • 수정 2016.12.17 12:39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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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어제 오전 한국농정 편집 담당자로부터 ‘서울에 눈발이 살살 날리네요. 오늘 원고 가능하시죠?’라는 연락이 왔다. 격주마다 글을 쓴지 벌써 10달이 넘어가는데도 매번 이렇게 카카오톡을 받아야 정신이 든다. ‘밤에 쓰면 되겠지’ 하고 청문회를 보고 소밥 주다 시간이 늦었다.

둘째 학교 시험기간 자습 감독 체험하는 날이라 엄마들이랑 간단히 저녁을 먹고 학교로 갔다. 공부하는 아이들 뒤에서 어깨를 가벼이 만지며 격려해 주지만 정작 울 아들은 왜 왔냐며 눈길이 곱지 않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 jtbc 뉴스 보다 눈 떠보니 아침이다. 시험 마친 아들이 친구들이랑 놀러온다 해서 대충 청소도 해야 하고, 전여농 토종 축제에 참석하러 8시30분에 서울행 버스도 타야 한다.

모든 뒷일을 오늘은 집에 있는 남편에게 양보하고 버스 타러 오는 길에 열어본 핸드폰에 편집 담당자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런! 글 쓴다는 걸 깜박했네”. 운전하던 남편은 무슨 정신으로 사냐며 타박이다. 황급히 사정을 알리고 차에 올라 표를 건내려니 기사님께서 “아무데나 앉으소! 혼자 밖에 안타요” 하신다. 우등고속버스를 대절해서 가는 참이라 차타는 긴 시간에 글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요즘 나의 넋이 좀 빠져나간 듯하다.

또 하나의 넋이 빠져 일어난 사건이 있었다. 남편은 전봉준투쟁단으로 서울에 가기 전 설사하던 송아지를 치료하고 우사도 깨끗이 치워 뽀송한 새 왕겨로 갈아 주고 떠났다. 온전히 집안일과 소밥은 내 책임이다. 연말이라 이런저런 총회 준비를 하느라 소는 눈여겨 볼 틈 없이 밥만 주고, 그 사이 머리는 핸드폰 어플 ‘팟빵’에 집중한다.

송아지가 그냥 누워 있으니 왕겨가 좋아 누워 있는 줄 알았다. 국회의 탄핵 가결이 있던 날 TV에 빠져 있다가 탄핵이 가결 되는 걸 보고 우사에 내려와 소밥을 주는데 저번 설사를 치료했던 송아지가 눈이 이상하다. 심각할 정도로 퀭하다. 황급히 들어가 송아지를 일으켜 세우니 비틀비틀 거린다. 엉덩이에는 피똥이 말라붙어 있다. 수의사에게 연락하니 밤에 링겔 맞히는 것도 위험하니 소금물을 먹여 보라고 한다. 버둥거리는 소를 제압해 먹이는데 송아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놀라 목과 배를 주물러보지만 송아지는 힘이 빠지고 눈이 풀렸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죽을 때 마지막으로 지른다는 소리였나 보다. 그제야 그동안 최순실 말대로 비정상적인 혼 상태로 보낸 나를 되돌아본다.

지금 같은 시국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국가가 없는 국민은 국가가 해야 할 일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자기일은 더욱 더 잘 챙겨서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를 살아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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