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누에치기 ③] 처녀들, 뽕따러 가다

  • 입력 2016.12.11 11:29
  • 수정 2016.12.11 11:3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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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경상북도 상주군 낙동면 상촌리 이장인 김병도 씨 네 집에 뚝딱뚝딱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집 짓는 소리다. 사람이 살 집이 아니라 누에들이 거주할 30평형 아파트, 곧 잠실이다.

손가락만한 누에들의 집이라 해서 그 건축공사가 만만한 게 아니다. 일단 전체 면적을 다섯 칸으로 나눈다. 나누어진 그 여섯 평짜리 공간을 들여다보면, 양쪽에 열 개씩의 층을 만들고 층층이 대나무로 엮어 만든 누에의 방, 곧 잠방(蠶房)을 올려놓는다. 그 열 개의 잠방에 거주할 누에에게 뽕을 먹이는 일을 한 사람이 책임 맡는다. 그러니까 30평짜리 잠실이면 열 명의 전담 거추꾼이 필요하다.

양력 5월, 김병도 씨의 집에 낯선 처녀 한 명이 찾아온다.

“지는 저어 쪽 내서면에서 왔는데예, 뽕따는 처녀 안 쓸 기라예?”

“그래? 구락부 처녀들이 멫 멩이나 되노?”

구락부(俱樂部)란 ‘클럽’의 일본식 음역어를 한자로 표기한 말인데, 육칠십년 대에 널리 쓰였다. 그러니까 이 처녀는 같은 마을 처녀 열 명으로 ‘그룹’을 만들어서 그 대표로서 교섭을 하러 온 것이다. 봄에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김을 맬 때까지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바로 그 농한기가 누에를 치는 기간과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품팔이 하는 처녀들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들이 유행가에 나오는 ‘뽕을 따는 아가씨들’이다. 물론 이들이 딴 뽕을 밭에서 잠사까지 운반할 총각 일꾼들도 필요했다.

“여그가 처녀들 방이고, 총각들 방은 저 쪽 행랑채에 있다. 연애질 못 하구로….”

처녀들이 까르르 웃는다. 합숙 기간 동안 처녀 총각이 연애를 걸면 누에 농사에 차질이 생길 것이므로 집 주인은 기숙사 사감의 역할을 단단히 해야 했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밥을 먹은 처녀들이 봄바람에 살랑살랑 검은머리 날리며 뽕따러 간다. 뽕밭에서 처녀들이 딴 뽕을 운반해서 창고에 저장하고, 또한 아침마다 처녀들에게 뽕잎을 분배하는 일은 총각들 몫이다. 뽕잎을 배급받은 처녀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칸의 잠사로 들어가서 누에들이 들어있는 잠방마다 뽕잎을 얹어놓는다. 그러니까 처녀들은 뽕밭에 나가 뽕잎을 따는 일뿐만 아니라, 자기 몫으로 배정받은 누에들에게 때맞춰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는 일까지를 책임지는 것이다.

“잠방에 먹이를 주고나면 누에들이 뽕잎 갉아묵는 소리가 마치 들판에 비 떨어지는 소리 같은 기라. 그래서 잠사에 첨 들어간 처녀들은 배깥에 비가 오는 줄 안다카이.”

누에치기 경험이 있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슬이 묻은 뽕잎을 먹이로 주었을 경우 누에가 설사를 하더라고 했다.

누에는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누에의 성장기간은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잠을 한 번 자고나면 나이 한 살씩을 먹는다. 그것을 나이를 뜻하는 령(齡)으로 지칭한다.

맨 처음에 알에서 깨어난 누에를 1령이라 한다. 이 누에는 나흘 동안 뽕을 먹은 다음 24시간 동안 잠을 자는데 이것을 ‘애기 잠’이라 부른다. 누에가 애기 잠에서 깨어나면 그 순간부터 2령이라고 한다. 2령의 누에가 이틀을 먹고 다시 24시간을 자고 깨어나 3령에 접어든다. 3령 누에는 다시 사흘 동안 뽕잎을 먹은 다음 잠이 들 고…이런 방식으로 누에는 통틀어 네 번 잠을 자게 되고, 잠을 자고 깨어날 때마다 뱀처럼 허물을 벗는다. 네 번째 잠에서 깨어나 5령에 접어들면 이 누에들을 삼각형으로 만든 섶에다 올려놓게 되는데, 섶에 올려놓고 난 뒤의 칠팔 일 동안에 먹어치우는 뽕의 양이 이전에 먹었던 뽕의 양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누에는 4령까지는 조 금씩 먹다가 막바지 5령에 접어들어서 집중적으로 많은 뽕을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병도 씨네 집에 처음부터 열 명이나 되는 뽕따는 처녀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에가 집중적으로 뽕을 많이 먹는 때에 대비해서 미리 인원을 확보해야 되는 것이다. 1령부터 4령까지는 일손이 그다지 바쁘지 않았으므로, 뽕따는 아가씨들도 조금쯤 여유가 생겨서, 저녁이면 가설극장에 활동사진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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