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 확산, 대책은 없었다

지난해 구제역 악몽 잊은 대가 피하지 못해

  • 입력 2016.12.10 22:28
  • 수정 2016.12.10 22:39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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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왜 파국을 맞았는지 알려면 복기가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3월 축산분야 업무 보고대회를 열고 ‘국민에 사랑받는 축산업’을 표어로 걸었다. 두 축은 악취문제 해결과 가축전염병 방역이다. 농식품부는 이 두 사안에 대한 농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인식 아래 정책을 내놨으며 보고대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기반조성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 농가에 탓을 돌리는 면피성 인식은 어긋난 평가를 내놓았다. 농식품부는 8월 구제역·AI 방역관리 대책을 발표하며 고병원성 AI를 포함한 가축전염병을 단기간에 적은 피해로 마무리했다고 자찬했다. 근거로는 발생횟수가 점차 줄었고 올해 발생횟수는 그때까지 2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들었다. 채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도 농식품부는 이렇게 자찬했다. 불과 3개월 남짓 지난 오늘, 농식품부를 향한 현장농가·전문가·국회의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구제역 발생 악몽에서 얻은 교훈이 없었던걸까? 농식품부는 2014년 여름 구제역 발생을 3건으로 막았다고 자평하며 백신 등 기존 방역체계에 이상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4월까지 끝나지 않는 구제역 발생 악몽을 맞았다. 그해 6월 농식품부 감사에선 백신선정, 검정기준, 공급체계 및 수입선 다변화 등의 업무가 미흡하거나 부적절한 사례가 나왔다.

대책이라도 제대로 만들었다면 재빨리 고병원성 AI 발생을 인지해 골든타임을 놓치진 않았을 터다. 지난달 7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고병원성 AI의 재발생 위험이 낮게 보인다며 철새정보알림시스템을 선보였다.

돌아보면 10월 28일, 건국대 연구팀이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를 채취한 뒤에야 나온 발표다. 이미 고병원성 AI는 국내에 상륙해 있었던 셈이다. 방역당국은 첫 시료채취 뒤 2주가 지난 11일에야 고병원성 AI를 확진했다. 철새정보알림시스템은 확진 판정이 나자 밀집단계는 건너뛰고 주의단계를 발령했다.

초동예찰에 실패한 방역당국은 뒤늦게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거듭 발동하며 확산방지에 나섰지만 암담한 상황이다. 농가와 지방자치단체 방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독약이 효력미흡이거나 부족하다는 원성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이렇다 할 예방대책 없이 농가 책임만을 강조하는 정부에 대해 농민들의 원성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충북 진천군 이월면의 한 토종닭 병아리 사육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약 5만수에 이르는 병아리를 예방적 살처분하기 위해 탄산가스를 주입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방역정책이 제대로 안 세워졌는데 고병원성 AI 발생 뒤 수급대책이 있었을리 만무하다. 잘 버티나 싶었던 육계시세는 1일 ㎏당 1,700원에서 8일 ㎏당 1,200원으로 추락했다. 경기 포천시에서 만난 한 육계농가는 “현장시세는 ㎏당 900원대다”고 기막혀 했다. 오리나 산란계보다는 타격이 덜하다는 육계의 상황이 이렇다.

발생 3주 만에 가금류 600만수를 살처분했다. 지난 시기에 방역대책에 관한 취재를 철저히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농식품부를 다그치는 비판에 일선기자인 본인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방역당국 담당자 모두가 다시는 후회어린 복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그래야 이 사회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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