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한기에 할 일들

  • 입력 2016.12.02 14:04
  • 수정 2016.12.02 14:05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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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날이 갑자기 추워진다. 뒷산에는 엔진톱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다. 화목보일러 땔감용 나무를 하는 소리다. 남편들은 땔감용 나무만 떨어지지 않게 해 놓으면 일단은 겨울나기 임무 완료다. 그러나 여자가 할 일은 하도 많다. 내년 된장용 메주를 쑤어서 햇볕 잘 드는 곳에 메달아 놓아야 하고, 집안 김장을 해야 하는 큰 대사가 기다리고 있다. 미리 미리 김치통은 많이도 가져다 놓았다. 시누에서부터 시작해서 딸네 아들네 김치통이 다 모여 있다. 김치통만 덜렁 던져 놓고 몸은 오지도 않는 가족도 있는데, 김치를 담아 놓으면 김치통만 모셔간다. 그래도 김치 별로 안 먹는 것 보다는 냉큼 가져가는 것이 고맙다.

알맞게 굵은 무는 비료포대에 넣어서 위를 잘 묶어서 둔다. 얼지 않는 곳에 잘 챙겨둬야 한다. 무도 겨우내 중요한 반찬거리다. 그 중 작고 모양이 안 좋은 무는 말랭이를 만들려고 썬다. 무 말랭이는 볕 좋은 곳에 말리기를 반복한다. 밤에는 얼고 낮에는 마르고 하면서 단맛이 밴다. 무청은 엮어서 그늘진 곳에 말려야 푸른빛의 시래기가 된다. 이 또한 중요한 반찬이다. 삶아서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살아있는 고향의 맛이다. 우리 의성은 조선배추로도 시래기를 만든다. 가을쯤에 씨를 뿌려 가을 반찬으로 실컷 뽑아 먹고 남은 것은 시래기를 만드는데 무청에 비해 연하고 맛도 좋다. 그 뿌리는 남겨 두면 봄에 올라와 봄동으로 먹을 수도 있고 그것으로 씨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큰 일, 촌 어른들은 일철에는 돌아가시지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일철이 끝나면 온 동네에 제삿날이 돌아온다. 그래도 일도 끝났고 여기저기 제사라 장만한 음식이 있으니 나눠 먹는다. 아침마다 오늘은 이 집으로 내일은 저 집으로 제삿밥 먹으러 다니며 정을 나눈다.

이렇게 하면 대충 겨울 준비는 끝이나나 싶지만 아니다. 1년 동안 빌어쓴 농약 값이며 도지세, 주유소 기름 값 등 이제 돈으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줄을 선다. 또 후계자 자금 원금과 이자, 농어촌 주택 할부금 등등 날아오는 고지서도 많다. 논 도지세는 햅쌀을 찧어 드려야 한다. 돈줄 막힌 겨울철에 날아드는 고지서는 더욱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쌀값은 떨어져도 기계 값과 농약 값은 더 오른다. 쌀값도 정확한 원가를 계산해서 산정해야 한다. 일철에는 통장에 들어오기도 하면서 빠져 나가면 흔적이 덜 남는데 지금은 곶감 빼먹듯이 빠져만 나가니 자리가 크다. 그에 따라 가슴도 휑하니 찬바람이 분다. 그래도 가족들 다친 사람 없었고,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 아이들 학교 보냈고, 이렇게 먹고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그렇게 혼자 위로한다.

올 겨울에는 나와 내 몸을 위해 면단위에 건설된 문화체육센터에 다녀볼 생각이다. 낮 시간은 아무래도 위험하고 아침 6시부터 시작하니 한 시간 정도 나를 위해 투자 해 볼 요량이다. 비용도 저렴하고 경로는 반값이다. 이것도 운전이 가능한 나 같은 사람은 걱정이 없지만, 운전이 되지 않는 이는 남편 눈치 보느니 차라리 맘을 주저앉힌다.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배려하는 남편은 흔치 않다. 대신 “내가 같이 모시고 갈게요. 같이 가요” 하니 얼굴이 밝아지신다. 겨울철에는 노동이 아닌 운동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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