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4] 헛되고 헛되다

  • 입력 2016.11.26 11:28
  • 수정 2017.05.26 10:21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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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윤석원의 농사일기]

요즘은 농사일이 크게 많지는 않다. 미니사과 나뭇잎은 한잎 두잎 낙엽이 되고, 밭작물은 거의 거둬들였다. 히카마, 참께, 콩 등도 한웅큼씩이나마 수확하여 가을걷이는 끝난 것 같다. 남은 것은 마른 풀들과 엄청나게 떨어진 풀씨들만이 휑한 밭 바닥에 흩어져 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로 갔다. 물치천을 따라 10여분을 걸으면 물치해변, 정암해변, 설악해변이 한 백사장을 이루며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시원스레 펼쳐진 수평선과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 나이에도 설레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일 보아도 해 돋는 풍광은 다르다. 구름의 모양과 날씨에 따라 다르다. 시원한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도시에 살 때는 상상도 못해보던 일을 나는 지금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10분이면 바다로 나갈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오늘도 어김없이 붉은 태양은 떠올랐다.

내년 농사를 위한 유기질비료.

그런데 내 나라 내 조국을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 진다. 한줌도 안 되는 권력자들과 간신들이 국기를 흔들고 헌정질서를 농단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재벌들은 뭐가 그리 흠이 많은지, 뭘 더 얻으려 하는지 권력 앞에 꼼작도 못한다. 일류라는 대학과 교수들도 권력에 빌붙어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자들 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박근혜 최순실 사태에서 보듯 저들은 온 국민들이 분노하는데도 조금의 양심과 수치심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얄팍한 잔머리만을 굴리는 간신배 측근들의 말만 듣고 있는 무능한 대통령의 당당한 꼴을 보고 있노라면 꼭 이완용 일당을 보고 있는 듯하다. 측은하기 까지 하다. 역사의 단죄를 받을 것이 뻔한데도 저들은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 별것 아니다. 돈과 권력, 명예 그 또한 별것 아니다. 평생 온갖 부귀와 권력과 영화를 모두 누렸던 이스라엘의 현왕 솔로몬도 죽음 앞에서의 고백은 ‘헛되고 헛되다’였다.

잔꾀 부릴 수 없는 우직한 농사일이 좋고, 하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해 농사가 크게 영향을 받으니 늘 겸손해야 해서 좋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니 소비자들의 건강과 자연생태 보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니 좋고, 노동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으니 좋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사 짓는 자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던가.

가장 가치 있는 삶이란 양심에 따라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리라. 헛되고 헛되지 않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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