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감 대신 사명감으로

  • 입력 2016.11.25 16:03
  • 수정 2016.11.25 16:0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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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이 땅의 농민들은 정말 농사짓기 힘들다. 취재 차 만나는 현장 농가마다 비싼 농자재 비용, 그리고 농사 과정에서 생기는 빚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쌀 농가는 트랙터가 한 번 고장 나도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의 돈이 수리비용으로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가는 1,000만원이 넘는 유기농자재 비용을 대며 힘겹게 농사를 잇고 있다. 어떤 농가는 비용이 많이 들 시 한 해 1,800만원의 돈이 든다고 했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대서 효과가 확실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러고도 병충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농작물 가격은 날마다 폭락할 뿐, 조금이라도 가격이 오를 기색이 없다. 외국에서 수입해 온 쌀이 우리나라 최고급 쌀의 가격보다 더 비싸다. 심지어 지금 쌀값이 30년 전 쌀값과 같은 수준이니 말 다했다. 가격이 ‘개 사료 값’만도 못하게 떨어진 쌀들은 가마니 째 각지의 창고에 가득 쌓여있다. 농민들은 판로가 다 막혔다며 한숨 쉰다.

농민들은 이런 상황일진대, 청와대에선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XX를 비롯해 태반주사, 영양주사 등 총 2,026만9,000원 어치 의약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비아XX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시) 고산병 예방을 위해 구입했다”고, 나머지 의약품은 “직원 건강관리를 위해 구입했다”고 한다.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5% 뿐이다. 농민들은 쌀값이 폭락하고, 농자재 비용으로 인해 늘어나는 빚 때문에 신음하건만, 저기 청와대 높으신 분들은 또다시 국민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내가 이러려고 농사를 지었나 자괴감이 들고 부끄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 농민은 비싼 유기농자재 비용을 들이면서도 유기농사를 고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유기농사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지난 12일 민중총궐기 사전마당이었던 농민대회 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만났던 농민들은, 어려운 농가 상황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대회에 참가한 한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농사짓던 것도 중단하고 (서울에)올라왔다.”

자괴감 대신 농사에 대한 사명감, 그리고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농민들은, 지금도 이 땅의 남쪽에서부터 트랙터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실로 험난한 길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 험난한 길도,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 ‘꽃길’로 생각하고 진군한다. 농민들, 그리고 우리의 노력으로 모두가 진정한 꽃길만 걷게 되는 그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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