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누에치기 ①] 뽕나무에는 뽕이 열리지 않는다

  • 입력 2016.11.25 11:42
  • 수정 2016.11.25 11:4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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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어린 시절, 고향 섬마을 60여 호 중에서 마당에 뽕나무가 있는 집은 용희네 단 한 집이었다. 감나무나 유자나무는 흔했으나 뽕나무는 동네에 한 그루밖에 없었다. 나이가 좋이 백 살은 되었을 것 같은 거목이었다. 늦봄에 열매가 푸릇하게 맺혔다가, 이내 불그스름해졌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 거뭇하게 익었다. 그 무렵이 되면 어느 한 날 하굣길에, 용희가 다른 동무들 모르게 나를 가만히 제 집으로 초대했다.

“시방 우리 집 뽕이 맛나게 익었어야.”

그런 날이면 마루에 책보를 팽개치고 부리나케 용희네로 달려갔다. 둘이서 뽕나무의 이 가지 저 가지를 잔나비 모양 재바르게 건너다니며 잘 익은 뽕을 원 없이 따먹었다. 입술에 푸르뎅뎅, 잉크 물을 들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을 다니러 윗녘으로 나갔을 때에야 뽕나무는 열매보다 잎이 더 중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누에고치를 처음 구경했으며, 번데기라는 요상한 버러지도 처음 먹어봤다. 더불어서 순전히 그 뽕 때문에, 나의 언어생활에 있어 매우 낭패스런 경험을 했다.

자기 집에서 누에를 친다는 짝꿍 재관이가 어느 날 잘 익은 뽕나무 열매를 도시락에 한 가득 담아 가지고 학교에 왔다. 아침 자습시간에 고놈을 동무들하고 나눠 먹으면서 내가 “앗다, 느그 집 뽕은 징하게 달고 맛나다 이”, 그랬는데 재관이 녀석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바보야, 뽕은 잎사구를 말하는 것이고, 이 열매는 오디라고 하는 것이여!”, 그러면서.

아이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까르르 웃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감나무 열매는 감이고, 살구나무 열매는 살구다. 그러니 뽕나무 열매는 뽕이다…그게 뭐 어쨌다고? 나는 ‘오디’라는, 어감이 영 밋밋하고 싱겁고 맨숭맨숭한 그 말을 평생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섬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말이었다. 더구나 1학기 중간고사 국어시험에서 무려 96점을 맞은 내가 64점 맞은 재관이 녀석으로부터 바보 소리를 들었으니 두고두고 억울했다.

 

내가 옛 시절의 누에치는 이야기, 혹은 뽕따는 이야기…아니 좀 더 점잖게 표현해서 양잠업의 변천과정을 취재하기 위해서 경상북도 낙동면 상촌리를 찾아갔던 때가 2001년 봄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의를 열어서, 경작하던 전답을 모두 갈아엎고 뽕나무밭을 조성했다. 마을 주민 전체가 쌀농사 보리농사를 작파하고 양잠업을 생업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가 찾아갔던 때는 그로부터 삼십 몇 년이 지난 뒤였는데, 이때는 이미 대부분의 밭에서 뽕나무가 뽑혀나가서 상전벽해, 아니 상전(桑田)이 다시 농토로 변한 된 뒤였다. 하지만 아직도 누에를 치는 농가가 몇 남아 있었다. 60년대 당시 마을 이장으로서 주민들을 ‘선동’하여 동네를 누에고치 집단생산기지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김병도 씨 역시, 아직도 뽕을 따고 누에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명주실을 뽑아내기 위하여 누에를 기르는 농민들이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잠사곤충연구회에서 누에가루가 건강식품으로 탁월한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발표가 있었다. 특히 당뇨환자에게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누에고치가 의외의 용처를 찾은 것이다. 이제 김병도 씨는 명주 옷감의 원료를 공급하는 잠사업 종사자가 아니라, 건강식품의 식자재를 생산하는 농민으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 마을에 양잠업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육칠십년대의 누에치던 이야기다. 지금은 내가 상촌리를 찾아갔던 때로부터 다시 15년이 흘렀으니, 뽕따고 누에 기르던 이야기는 이미 과거완료, 아니 ‘대과거’가 돼버렸다.

구수한 저음을 구사하던 홍민의 <고향초>라는 노래를 듣다보면 ‘뽕을 따던 아가씨들 서울로 가네…’라는 구절이 있다. 그 아가씨들이 서울로 가기 전, 낙동면 상촌리의 즐비한 뽕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뽕따는 계절이 오면 김병도 씨의 집에도 인근 고을에서 몰려온 여남은 명의 아가씨들이 합숙을 하면서 일당벌이를 했다는데…혹 뽕나무 아래서 동네 총각과 연애를 걸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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