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비오는 장날 읍내 병원

  • 입력 2016.11.25 11:40
  • 수정 2016.11.25 11:42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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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나라가 요상허니 날씨도 덩달아 요상하단 말이시. 배추가 다 썩어부러 어찌 김장 담을랑가 걱정이구먼.” “안 그래도 배추 값이 한 폭에 2,000원씩이나 허드랑께.”

병원 접수대 앞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릎관절 어깨관절 허리에 손가락까지 관절 아픈 사람들 부지기수다. 이어서는 목감기 콧물감기 몸살감기 등 감기환자들로 넘쳐난다. 비오면 어차피 들에 나가 일 할 수 없으니 다들 병원에 다녀가시나 보다. 오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면 한번은 대처에 나가고 싶은 맘이 들지 않을까? 겸사겸사 나오신 분들이 다들 들리는 곳이 병원이었다. 진료를 끝냈어도 물리치료 받기 위해, 영양제를 맞기 위해 기다리니 접수처 앞이 대목 맞은 장터 모습 그대로다.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참는 편인데 오래갈 것 같아 병원에 왔더니 진료 받기도 전에 병 얻어갈 판이다. 간호사도 너무 시끄러운지 TV를 켠다. 곳곳이 속보 천지다.

“오메 저것이 머시다요, 나라 망신 하나는 지대로네.” “근디 비아그라가 으디 아픈디 쓰는 약이다요?” “혼자 사는 것이 비아그라는 으따가 썼을까이.” “살다 살다 진짜 별꼴 다보네”. 다들 한마디씩 하신다. “입으로만 허믄 누가 무서워라 하겄쏘잉, 뭐라도 해야제. 안 그래도 머리 아퍼 죽겄는디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봉게 딱 미처불겄소.” “내가 이러려고 농사지어 사람들 멕여 살렸나 자괴감이 드요 시방.” 어느 샌가 아픈 사람 천지인 병원 접수처가 성토장으로 변했다. 만민공동회가 이런 식이었을까? 시국대토론회가 이런 식일까? 호남 지지율이 0%라더니 진짜 맞긴 맞나보다. 이의제기 하는 분도, 불쌍하다 하시는 분도 없다.

하지만 ‘그 후’를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놈이 그 놈이고 정치란 본래 더러운 것이라고 다들 한마디씩 보탠다. 평생 농사지으며 관절이 다 마모되는 줄도 모르고 살아오신 농부들이 제대로 뿔이 났다. 필요하면 자판기에서 뽑아 쓰는 농산물이 아니건만 또 한 번 김장철 배추 한 포기 만원될 날이 없으리란 법이라도 있는가? 쌀값이 30년 전으로 떨어져도 계속 농사지을 거라 생각하는 정부 관료들이 수두룩하고 농민들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라도 되는가? 말도 안 되게 진행되는 나라 꼬락서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농민들이 농기계를 몰고 청와대를 향해 진격 중이라고 한마디 보탰다.

200년 전 동학농민들이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서울을 향했듯이 2016년 농민들이 사상초유의 국정농단에 살인정권 쌀값폭락 관심 없는 정부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다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저 가마떼기 취급을 할 뿐만 아니라 개돼지 취급을 하는 이 때 농민들이 나서지 못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병원 접수대 앞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마을회관에서 목소리를 모아내야 한다. 3월 1일 전국 각지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우리 선조들처럼 장날에라도 한 곳에 모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힘 모아야 한다. “나도 끼워주씨요잉. 서울 사는 손자도 촛불인가 들고 나간다든디,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울 애기들이 뭔 죈가 모르겄네.” 바로 이 곳이 만민공동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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