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마늘심기와 12일 민중총궐기

  • 입력 2016.11.19 10:23
  • 수정 2016.11.19 10:24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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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우여곡절 끝에 마늘을 다 심었다. 여름내 무섭도록 덥고 가물더니만 가을바람이 불면서 연신 가을비가 내렸다. 첨에는 반갑던 가을비가 지겹도록 내렸다. ‘그래, 지금 내리고 마늘 심을 때는 내리지 마라’ 라는 심정으로 버텼다. 나락을 베러 들어간 콤바인 주인의 얼굴이 안 좋다. 논이 많이 질다는 것이다. 소먹이 짚도 바로 타작을 하면서 잘게 썰어 버리고 논을 갈아엎는다. 어찌하든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전까지는 마늘을 다 심어야 한다는 조바심에서다.

전에 같으면 일 두고 가냐고 짜증을 부렸겠지만 백남기 농민을 부검영장으로부터 지키자고 서울대병원에 가는 남편을 내 몫까지 하라고 군소리 없이 보냈다. 이 시국에 둘 다 일하고 있는 것보다는 한 사람은 일하고 한 사람은 서울로 가는 것이 더 맘이 편하다.

유일한 낙은 일하고 들어와 저녁밥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JTBC 뉴스를 보는 것이다. 뉴스가 심상찮다. 무슨 야사에나 나올법한 일들이 버젓이 한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 주변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나 같은 촌 아낙의 머리로도 이해가 안 된다. 얼마나 크고 책임감이 막중한 대통령이라는 자리인데 저렇게 만들어 버릴 수 있나 싶다. 요즘 유행하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라고 자괴감이 든다’는 말! 대통령은 네가 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시켜준 것이니 최순실 말고 국민들의 의중을 물어가면서 할 일이다.

갈아 엎어둔 논은 덜 말랐지만 로타리를 친다. 마늘도 주인 맘을 아는지 하루가 다르게 뿌리가 나온다. 논 앞쪽은 그래도 말라서 보슬보슬 하지만 물이 고이는 뒤쪽은 로타리를 치니 떡이 된다. 그래서 앞쪽은 기계로 심고 기계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뒤쪽은 예전처럼 괭이로 골을 그어서 심자고 남겨둔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 논 한 논이 심겨져 가니 다행이다.

그런데 마늘 씨가 엄청나게 든다. 논이 질다 보니 기계가 예전처럼 나아가지를 못하고 마늘 씨는 레일 따라 똑같이 떨어진다. 마늘 씨 없냐며 걸려오는 전화에 씨 없는 심정은 알아서 자꾸 보내다 보니 정작 우리 마늘 씨도 모자란다. 그렇다고 다 장만해 놓은 논을 비워 둘 수는 없다. 어둡도록 마늘을 심고 새벽에 일어나 의성장으로 나가니 마늘을 다 심은 분들이 남은 씨를 가지고 나오셨다. 값이 비싸지만 어쩔 수 없다. 씨를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알람을 5시에 맞추고 잠깐 눈을 붙인다.

알람 소리에 깨서 집안에 있는 온 밥솥을 꺼내서 밥을 안친다. 민중총궐기가 바로 오늘이다. 의성은 농민회에서 차량을 준비하고 여성농민회는 밥이랑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도저히 못 가시는 회원 분들은 찬조와 국을 끓여 주시고 밥도 서너 명 나눠서 하기로 했다. 거기에 김치랑 명태무침만 있으면 넉넉하다.

역사의 현장은 잔치 분위기다. 큰 상여가 지나가고 우리는 초상집에 온 것처럼 잔치를 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어떤 충돌도 없이 서로 양보하며 배려하며 행사가 치러진다. 그 곳 그 자리에 함께 한 것만도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들에게도 큰 경험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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