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업] 북측 농기계에 들어있는 남북 교류의 흔적

  • 입력 2016.11.19 10:20
  • 수정 2016.11.19 10:22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지난 10월에 있었던 제43차 전국농기계전시회 및 창안자회의에 관한 소식이 남측의 언론매체에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소식 가운데 두둑 짓기(논두렁 조성) 기계 2종이 현장 참가자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혹시 이 기계가 과거 통일농수산사업단이 진행했던 금강산지역 공동영농사업과 맥락이 닿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단 후 최초로 남북이 금강산지역에서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2004~2008년 공동영농사업을 진행할 당시 이앙기, 트랙터, 경운기, 콤바인 등과 같은 남측 농기계가 협동농장에 투입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북측의 농기계 일꾼들은 여러 농기계 가운데서도 유독 논두렁 조성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경운작업과 정지작업 그리고 논두렁 조성작업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논두렁 조성기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매우 컸다. 당시만 해도 북측에는 이런 유형의 농기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측의 농촌진흥청에 해당하는 농업과학원 본원은 평양에 있고, 전국 각지에 있는 5개소의 분원 가운데 한 곳이 원산에 있는데, 본원 및 원산 분원에 근무하는 농기계연구사들이 수시로 현장을 방문했고, 논두렁 조성기를 포함한 다양한 농기계의 성능과 구조 그리고 작동방식 등을 탐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 이후 공동영농사업은 중단됐지만 당시 협동농장에 투입됐던 농기계는 그대로 남았고, 농기계에 관해 이전된 지식과 경험도 그대로 남았다. 아마도 북측의 농기계연구사들은 금강산지역에 남겨진 농기계를 분석하고 연구해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개량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이번 농기계전시회에서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은 논두렁 조성기가 아닐까 하는 즐거운 추측을 해 본다. 참고로 이번에 주목을 받은 논두렁 조성기 가운데 하나는 만경대 농장과 김일성종합대학 평양농업대학 연구사들이 만든 두둑 짓는 기계이고, 다른 하나는 원산 북쪽에 위치한 함경남도 정평군 농기계작업소에서 만든 두둑갈이 기계라고 한다.

이번 농기계전시회에 출품된 농기계는 모두 약 30여 종에 240여 점이라고 한다.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은 논두렁 조성기 외에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농기계는 평안북도 염주군 향봉협동농장에서 출품한 원격조종 소형 벼 수확기 등을 비롯해 황해북도 은파군 농기계작업소에서 출품한 이동식 옥수수 종합탈곡기, 평안남도 회창군 농기계작업소에서 출품한 이동식 콩·밀·보리 탈곡기 등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기계들의 공통점은 수확기에 주로 필요한 농기계라는 점이다.

북측은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800만~900만 명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남측에 비해 농업노동력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집중적으로 농업노동력이 투입돼야 하는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측 당국도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농기계 개발 및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런데 예전의 농기계 개발 및 보급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주로 트랙터와 이앙기였다. 이 기계들이 주로 사용되는 경운과 정지 및 이앙 작업은 대부분 봄철 파종 및 모내기에 필요한 농작업에 해당한다. 즉, 예전에는 주로 봄철 파종 및 모내기에 집중해 농기계를 개발·보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수확 및 탈곡에 필요한 농기계의 개발·보급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봄철 농번기에 필요한 농기계의 개발 및 보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가을철 수확기에 필요한 농기계의 개발 및 보급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인더 및 탈곡기 등에 관심이 높고, 농기계 전시회 및 창안자회의에서도 이런 유형의 농기계가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북측이 식량생산 증대를 위해 강조하고 있는 이모작(두벌농사)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가을철 수확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수확을 완료한 후에 밀, 보리 등과 같은 월동 작물의 파종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도 가을철 수확기에 필요한 농기계 개발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확기에 필요한 콤바인이나 다양한 유형의 탈곡기 등도 예전 남북 농업교류협력 당시 남측의 농기계가 북측에 소개돼 북측 농기계 일꾼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비록 남북교류가 중단됐지만 북측에 남겨진 농기계와 기술 및 지식은 북측의 농기계 일꾼들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