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

충청도 농민 취재기

  • 입력 2016.11.18 13:01
  • 수정 2016.11.18 13:0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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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12일 오후, 숭례문-시청 간 도로는 농민들로 가득 찼다. 농민들은 농업을 파탄내고, 국정을 갖고 논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자 모였다. 충청도 지역 농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농민들이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충북 청주에서 온 익명의 한 농민은 같이 온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박근혜 퇴진시키려고 가을걷이도 못 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는 기자에게 “먹을 게 없네”라며 겸연쩍게 웃으면서 귤 한 개를 준다. 이어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농민들에게 외친다. “박근혜가 농사에 대해 뭘 알어! 쥐뿔(원래 더 심한 표현이었으나 순화)도 몰러!” 같이 있던 농민들도, 기자도 모두 박장대소했다.

그렇다. 농민들의 가장 큰 목표는 ‘박근혜 퇴진’이었다. 충남 천안에서 온 정수용 농민은 “친일파 후예인 현 정부를 몰아내러 왔다. 일단 박근혜가 퇴진하고 연립정부를 세우든, 선거를 다시 하든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농정신문 잘 보고 있다”고 덧붙이며 기자를 격려해 줬다.

‘박근혜 퇴진’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구호는 ‘쌀값 보장’이었다. 충남 청양에서 온 허준회 농민은 “쌀값이 해마다 떨어진다. 이건 농민들 살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이명박 때나 박근혜 때나 농업정책은 완전히 내팽개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가 덜 마무리되긴 했지만 어찌 안 올 수 있겠나”라고 자신이 올라온 이유를 밝혔다.

무대에선 상여소리 인간문화재들이 “어이 하!” 소리를 반복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무대에 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김영호, 전농)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이들이 전남 영광과 충북 진천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기자는 마침 진천군농민회 깃발 아래 있었다. 계속 “어이 하!” 소리가 반복되던 중 바로 옆에 있던 진천군 이곡희 농민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농촌의 또 다른 현실을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 동네는 30여 호 되는데 초등학생, 중학생이 아예 없다. 한때는 초등학교 한 학년 당 5명씩은 있었는데, 지금은 전멸이다. 동네에 오직 고등학생 한 명이다. 연령대는 70~80대가 주류이다. 이러다간 농촌에 사람 씨가 마를지도 모르고, 이대로는 식량안보도 위험하다.”

잠시 후 무대에선 민중가요 <아스팔트 농사>가 울려 퍼졌다. ‘박근혜 퇴진’을 위해 원래 짓는 농사도 중단하고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했던 충청도 농민들. 그들은 언제쯤 맘 편히 농사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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