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화전민 ③] 강원도 홍천에 ‘화전 개척단’이 떴다!

  • 입력 2016.11.11 11:18
  • 수정 2016.11.11 11:2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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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산으로 가자, 바다로 가자!」

피서 철 여행사 사무실에 붙어 있는 표어가 아니다. 1963년부터 1969년까지 강원도 도지사로 장기간 재임했던 박경원이 내건 도정(道政) 슬로건이었다. 식량증산이 지상과제였던 시기였으므로, 야산을 개간하여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넓히고, 또한 어업소득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군역을 마치고 홍천군 북방면에서 형과 함께 화전 몇 뙈기를 일구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고 있던 이정식은, 도지사가 도청 앞에 내건 구호가 아니더라도 이미 산간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나물을 뜯든 칡뿌리를 캐든, 일용할 양식을 구하려면 가지 말라 해도 어차피 산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홍천군청에서 「산으로 가자」의 구체적인 실천방안 하나를 내놓았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 다녀온 형 이태식이 꽤 근사한 소식을 물고 왔다.

“저쪽 내면(內面)에 엄청나게 큰 동네 하나가 새로 생긴다더라. 홍천군의 각 면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뽑아서 야산을 화전으로 개간하는 사업을 한다는데, 한 사람당 4천5백 평을 무상으로 나눠주고 세 칸짜리 집도 공짜로 지어준다더라. 동네마다 서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하다는데….”

“나, 거기 갈게요.”

그 때 이미 이정식은 결혼을 해서 자식까지 거느리고 있던 터였으므로, 군말 없이 화전 개척단의 일원이 되겠다고 나섰다. 1965년 여름, 각 부락에서 뽑혀온 81세대의 가장들이 홍천군청 앞마당에 집결했다. 군청 직원이 손 마이크를 꼬나들고 일장 연설을 했다.

“여러분이 갈 곳은 저 쪽 남면의 자운리라는 마을 위쪽에 있는, 오대산 자락의 산간지역입니다. 지금 여기는 한여름이어서 무덥지만 그 쪽은 해발 8백 미터가 넘는 곳이라, 거기 올라가면 시원할 거예요. 거기서 여러분이 할 일이 뭐냐, 야산을 개간해서 옥토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화전 개간 작업이 끝나면, 약속대로 4천5백 평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집도 지어 드립니다. 자, 다들 타세요!”

“아니, 이거 뭐, 우리가 아무리 없이 산다지만 일제에 징용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무턱대고 ‘도라꾸’에 타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거기 가면 어디서 뭘 먹고 지내는지, 마누라하고 애들은 언제 데리고 들어가는지 그런 것을 말해줘야지!”

“여러분의 남은 가족은 여기서 금년 농사를 마무리하고 11월쯤에 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개간 작업을 하게 되면 일당을 밀가루로 지급할 거예요. 여러분에게 제공할 미국 원조 밀가루가 저기 농협창고에 가득 쌓여있으니까 암 걱정 마세요. 자, 그럼 우리가 개척할 새로운 낙원을 향해서 출발합시다!”

화물트럭에 나눠 탄 여든한 명의 화전 개척단원들은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하루 종일 내달렸다. 달려드는 흙먼지 때문에 캑캑, 기침을 해대면서도 저마다 그 ‘약속의 땅’에서 만들어 갈 제 가끔의 낙원을 꿈꾸면서….

홍천군 내면 자운리. 조용하던 산간마을에 여든한 명의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마을 위쪽 비탈바지 야산을 개간하기 위해서 실려 온 사람들이었다. 이미 행정관청에서 기존의 주민들에게서 방 한 칸씩을 징발한 다음, 누구누구가 어느 집에 들어가 거처할 것인지, 인원 배치 계획까지 사전에 세워뒀던 것이다. 이정식과 한 방에서 기거할 ‘룸메이트’는 이웃마을에서 온 최 씨와 한 씨였다. 첫날 아침, 그날 식사당번으로 정해진 최 씨가 큼지막한 냄비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자, 식사가 왔습니다. 맛있는 수제비가 왔어요!”

“어이구, 하다 못 해 푸성귀 부스러기라고 좀 넣고 끓이지, 이거야 그냥 멀건 풀죽이잖아.”

그렇게 시작된 수제비 식사는 여름 내내, 그리고 늦가을에 남은 식구들이 들어와 합류할 때까지 삼시세끼 만나야 했던 유일무이한 식단이었다.

2001년 봄에 내가 취재차 찾아갔을 때, 이정식 노인은 수제비로 연명하던 ‘개척시대’의 얘기를 들려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지금도 밀가루 음식이라면 냄새도 맡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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