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를 털어내자

  • 입력 2016.11.11 10:12
  • 수정 2016.11.11 10:47
  • 기자명 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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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교수

전반적으로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비교적 높았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중공업과 수출 위주의 산업화가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농촌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딸인 박근혜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도농 지역을 떠나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지지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최근 네이처 리퍼블릭이라는 한 회사의 비리는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최순실이라는 일반인과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유착관계와 국정개입 사태가 밝혀지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됐다. 특히 최순실의 딸이 누린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특혜 문제는 국민들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고, 또 한 방송국이 입수한 작은 휴대용 컴퓨터에 담긴 자료는 국정 전반에 걸친 기강 문란이 얼마나 깊게 무너졌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새롭다기보다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부터 내려온 것으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교의 대물림이 있었음이 드러났고, 이를 통해 우리는 평소 과묵한 언사나 사람 대면을 좋아하지 않는 현 대통령이 우리가 생각했듯이 진중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음을 확인하게 됐다.

일반 개인의 국정 전반에 걸친 개입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모습이 왜 그리 일관성이 없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최순실 비선조직은 활약해 왔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마치 통일대박이란 말을 사용해 국민들의 기대를 크게 했지만,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통일을 추진하기는커녕 사드 배치 등, 오히려 한반도 전쟁 위기를 증폭시켜 온 것도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으로서 일관성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는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대통령 모습을 접한 국민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배신감은 매우 크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거국적 분노는 당연하다. 이 점에서 이런 대통령을 그토록 지지했던 농촌도 더 이상 박정희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막연한 기대를 청산할 때에 온 것으로 보인다.

독재정권 시절, 대한뉴스라는 홍보물 기억이 있는 60대 이상의 세대는 독재 권력이 심어 놓은 암묵적인 영향권 내에 있다. 일종의 향수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감정을 통해 우리는 말도 잘 못하는 현 대통령을 무게 있는 과묵한 정치인으로 여기게 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순실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청와대와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스스로 몸을 낮추었다. 우리 스스로 내면으로부터 자신을 검열하면서 무릎 꿇은 셈이다. 이와 같이 대통령은 몇 마디로 대기업들을 알아서 엎드리게 했고 약 800억원은 손쉽게 걷혔다. 이처럼 사기업화된 국가는 결코 국민을, 농민을 돌보지 않는다. 이런 국정 운영에 있어서 대선 공약과는 달리 쌀값이 13만 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는 대중을 따른다. 이번 국민 분노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은 해방 이후 권력을 쥔 위선자들이 우리 내면에 심어 놓은 암묵적이자 감성적인 부분이다. 더 이상 독재자와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을 기대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이성과 상식의 평범한 인물이 좋은 정치인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 있는 과거의 낡은 권력자에 대한 향수를 털어내고 사회의 주인으로 되돌아 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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