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계 수직계열화 방식, 독일엔 없다

  • 입력 2016.11.06 11:52
  • 수정 2016.11.06 11:54
  • 기자명 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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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

통상적인 축산은 농가가 자기 책임 하에 어린 가축과 사료를 구입하여 자가 소유의 축사에서 사육한 후 시장에 내다 파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육계는 90% 정도가 수직 계열화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다. 즉, 육계 계열업체(닭고기 생산 전문 업체)가 병아리, 사료 등 생산자재를 계약사육 농가에게 제공(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맡김)하면, 계약사육 농가는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축사와 노동력을 이용해 닭을 키운 뒤 회사의 요구에 따라 출하하고 사전에 정한 사육보수(사육수수료)를 받는 것이 수직 계열화 방식이다. 현재, 전국에는 HR, CB, DW 등 50여개의 계열업체가 성업 중이지만 그동안 육계 계열화사업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핵심 문제는 생산자재의 품질문제와 육계 사육 농가가 닭을 키워준 댓가로 받는 보수 즉, 사육수수료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선진국 독일에서는 이러한 수직계열화 방식의 육계 계약 사육은 없다. 만일 독일에서 우리나라처럼 수직계열화 방식을 쓴다면 농가는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고 세무당국은 농가를 회사의 피고용자로 간주한다. 그렇게 되면 독일 사회보장제도법률에 따라 회사는 직원(농가)에게 의무적으로 년간 20일 이상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고, 농가가 육계를 생산하지 못해도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회사가 이런 부담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독일 육계농가는 독립된 주체로서 계약을 통해 생산자재(병아리, 사료)를 구매하여 닭을 키운 후 자기가 생산한 육계를 사전계약에 따라 도축장(회사)에 판매한다. 독일에서 단독으로 육계를 사육하면 농가에게 유리한 점이 많다. 농가가 독립사업자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립사업자는 사회보장법에서 의무로 정한 건강보험, 연금보험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독일의 민간 보험료는 법정 사회보장 보험료보다 싸다. 또한, 농가들은 독립사업자들이기 때문에 실업보험을 따로 들 필요도 없다. 결국 독일의 농가, 회사 누구도 이러한 부담을 안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독일에서는 국내에서와 같은 수수료방식의 수직적 계열화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한 제도이다.

만일, 국내에서도 농가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주체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농가와 회사가 생산자재의 품질이나 사육수수료를 놓고 벌이는 분쟁의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닭고기 수급 불안정으로 가격진폭이 심할 경우 그 위험을 회피하는 방안, 생산자재 구매자금의 부담문제, 계열회사들의 합의 도출 등을 들 수 있다. 위험회피 문제는 손해보험이나 손실보전 기금조성 등을 통하여, 자금부담 문제는 외상거래(독일에서도 시행)를 통하여 탈출구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육계 계열업체와의 합의 문제는 보험법(보험 상품모집 총액제한), 방송법(방송편성 외주제작 의무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법률(동반성장위원회 합의기구) 등을 참고하여 육계 계열업체로 하여금 육계 생산의 일정 부분을 상생차원에서 독립 육계 생산농가가 단독경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방안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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