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추폭락, 버림받은 농촌의 표상

  • 입력 2016.11.04 15:49
  • 수정 2016.11.04 15:5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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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우리나라 농업의 대표작목이라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쌀이다. 그럼 두번째는? 배추, 양파, 한우, 사과… 시각에 따라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농촌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고추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에서 강원까지 모든 지역에서, 영세농이든 대농이든 누구나 지을 수 있는, 또 지어야 하는 작목. 농촌의 빈틈과 농가경제의 빈틈을 가장 살뜰하게 메워 주는 작목이 바로 고추다.

그런 고추가 4년째 내리 폭락을 맞고 있다. 쌀값 폭락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올해는 그 중에서도 대폭락이다. 농민들마다 근당 생산비를 5,000원에서 7,000원까지 주장하는데 지금 산지가격은 3,800원 수준이다. 영세농들의 가계경제는 메말라가고 전업농들은 농사일 이후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쌀값 폭락이 우리 농업 근간의 붕괴라면 고춧값 폭락은 그 잔가지·실뿌리의 붕괴다.

4년. 문제는 4년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고춧값이 폭락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책을 내지 못했다. 그 사이 중국산에 시장의 절반 이상을 내주고 우리 농민들이 폭락에 시름해야 하는 고질적인 구조가 완성됐다. 정부는 재고 과잉으로 신규 수매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아직도 2013년산 재고량 처리에 급급해하고 있다.

무능도 무능이지만 4년이란 시간은 무관심을 지적하지 않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예컨대 기업들의 매출이 4년간 감소했다면, 출생률이나 이혼률이 4년간 급격히 악화됐다면, 하다못해 스포츠 효자종목이 4년간 죽을 쒔다 하더라도 고추에서와 같은 무대책이 가능했을까?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농업·농촌의 현실이 고스란히 지금 고춧값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나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어느 쪽이든 열 뻗치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약속은 과연 박근혜 본인의 의지였을까, ‘박근혜 사용자’의 의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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