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논리가 잠식한 농협 양곡사업

  • 입력 2016.10.29 11:54
  • 수정 2016.10.29 11:57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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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지역농협 간 판매 경쟁으로 쌀값이 하락되는 걸 방지하고자 세운 농협양곡이 설립 초기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쌀값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한 지역농협 미곡종합처리장으로 햅쌀이 들어오는 가운데 소비되지 못한 재고쌀이 한 쪽에 쌓여 있다. 한승호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김병원)는 지난 2015년 3월 100% 출자로 ‘농협양곡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농협이 중앙회에 양곡부를 두고도 농협양곡을 자회사로 만들면서 내세운 가장 큰 동기는 ‘쌀 소비촉진’과 ‘양곡유통 일원화’다.

농협이 밝힌 농협양곡 발족의 가장 큰 목적은 판매 경쟁으로 인한 쌀값 하락 방지다. 쌀값이 떨어지게 된 이유가 전국 153개 RPC(미곡종합처리장)와 100여개의 민간RPC가 지역에서 경쟁하고, 지역농협도 소비지에서 경쟁을 하기 때문이므로 농협끼리 뭉치자는 취지다.

따라서 153개의 RPC들이 농협양곡에 현물출자 형태의 주주 참여 방식으로 유통통로를 단일화해 시장 교섭력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곡유통 단일화를 통해 쌀값 하락을 방지하면 정부예산도 절감하고 농가 소득도 지지해주는 2가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농협양곡에 현물출자 의사를 밝힌 지역RPC는 68개로 알려졌으며 농협양곡은 이 중 10곳을 먼저 참여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6년 10월 말 현재 농협양곡에 현물출자를 한 곳은 익산통합RPC 뿐이다.

농협은 2012년 경제지주 체제로 전환되면서 쌀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2014년부터는 의지를 구체화해 수매·가공 등의 원료확보·저장·판매기능이 있는 지역농협RPC에 현물출자를 제안했다. 흑자를 내고 있던 경기·강원지역 RPC들은 농협이 또 다른 경쟁상대로 시장을 잠식할 것을 우려해 반대의사를 보였다. 적자를 만회하고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일부 RPC도 터무니없이 낮은 현물 가격에 출자를 거절했다. 농협의 쌀 회사 설립을 위한 첫 번째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농협은 RPC를 광역별로 묶은 쌀 회사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전국을 한꺼번에 묶으니 지역적 편차가 발생해 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역별 RPC는 지역농협에는 특별한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면서 오히려 시·군으로부터 받던 여러 지원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큰 약점이 발견됨에 따라 무산됐다. 세 번째 시도 끝에 가능한 지역부터 현물출자를 하기로 결정하고 자회사인 농협양곡에 올해 익산통합RPC가 출자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농협의 양곡사업이 지역농협 시장을 직접적으로 잠식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지역농협의 쌀 판매를 가로막아 결국은 시장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농협이 새로운 사업체를 만드는 행위는 농민에게 최소한의 가격을 보장해주기 보다는 회사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농민을 수탈하는 구조가 강화될 뿐이라는 해석이다.

‘농민들의 소득을 지지하고 쌀을 잘 팔아주고 싶으면 기존 RPC를 쌀 품목별 연합회로 묶고, 이를 지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RPC와 지역농협이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사업의 틀을 짜주면 그 뿐인 일을, 굳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체를 만들어야 하냐는 것. 이는 결국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이 포함될 수밖에 없고 지역농협의 시장성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농협의 기본원칙인 ‘협동조합간 협동’을 적용한 RPC연합회를 농협 양곡사업의 개선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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