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탱자이야기

  • 입력 2016.10.28 11:45
  • 수정 2016.10.28 11:48
  • 기자명 나현균 김제더불어사는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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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균 한의사 김제더불어사는협동조합 대표

어릴 적엔 탱자나무 울타리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서슬 퍼런 가시가 도둑과 귀신으로부터 집안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그럴듯하게도 탱자나무 울타리는 든든하면서도 우리네 민생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퍼런 가시들 사이사이로 하얗게 피어난 조그마한 다섯 이파리의 꽃은 마치 고난을 뚫고 지탱해 온 우리네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듯 처연한 모습이었으며, 늦가을철 더욱 추워 보이는 가시들 틈사이로 언뜻언뜻 밝은 빛을 발하는 노란 탱자는 역경 속에서 힘겹게 완성된 아름다운 삶의 결실처럼 보였습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여 한 입 베어 보면 그 쓰고 신맛에 금방 눈살을 찌푸리지만 잘 익은 탱자의 신맛 속에 감춰진 단맛은 기나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혀끝에 침이 고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탱자가 사랑받았던 것은 그 노랗게 물든 가을빛과 그 속에 감춰진 마법과도 같은 향기 때문이었습니다.

탱자의 향, 어린 날의 우리들은 이 향에 이끌려 가시에 찔리는 줄도 모르고 어렵사리 손을 넣어 잘 익은 탱자를 골라 딴 뒤 그 중 제일 빛깔이 좋은 것으로 몇 개를 책상 맡에 두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방안이 금세 향으로 가득, 비록 먹을 수는 없어도 그 내음만은 마음을 온통 미래에 대한 행복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오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탱자향의 주성분이 ‘리날로울’과 ‘리모넨’이란 성분입니다. ‘리날로울’은 항불안 항우울 항바이러스의 작용이 있어 마음을 진정시키고 행복감을 갖게 합니다. ‘리모넨’은 항암 항염 효과가 좋은데, 특히 목의 염증치료에 효과가 높아 인후통이 있는 감기라면 이 향들을 발하는 성분들이 바로 치료제가 되는 것입니다. 항알레르기 작용도 하기 때문에 아토피 피부염 등으로 피부에 소양감이 있을 때 달여 먹거나 달인 물을 발라 주어도 좋은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또한 탱자는 예로부터 소화기와 관련된 질병에 거의 단골메뉴로 이용돼 왔습니다. 탱자의 껍질을 잘라서 만든 지각(枳殼)이란 약은 막힌 기운을 뚫어준다 하여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에 자주 쓰였으며, 미성숙한 푸른 탱자를 그대로 말려 만든 지실(枳實)이란 약재는 식체(음식 먹고 체한 것)를 다스리고 변비로 고생할 때 통변을 유도하는 유용한 약재로 쓰여 왔습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란 말이 있습니다.

귤화위지란 남쪽의 귤이 회수(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강)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의미로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성품이 바뀌게 된다는 의미의 고사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귤이나 유자나 탱자가 사실은 같은 운향과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운향과에 속하는 과일들의, 그 향을 발하는 정유성분에는 공통된 성분들이 많아 거의 비슷한 용도로 사용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특히 귤 껍질을 묵혀 약으로 쓰는 진피(陳皮)는 예로부터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기가 있을 때 막힌 것을 뚫어주는 역할로서 위장을 다스리는 약으로 쓰여 왔으며 감기증상을 완화시키는데도 이용돼 왔습니다.

유자 또한 예로부터 피로회복과 중풍예방에 좋은 과일로 알려져 왔습니다.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리모넨 성분과 펙틴성분이 풍부하고 모세혈관을 보호하며 혈압을 낮춰주는 헤스페레딘이라는 물질 역시 풍부합니다.

성질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운향과 과일들(탱자, 귤, 유자, 오렌지, 한라봉 등)은 그 독특한 향이 사실 우리 몸에 좋은 약리작용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운향과 식물의 과일껍질에는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화하여 피로를 회복시킴은 물론 감기 등으로 인한 상기도감염에도 직접적인 소염작용을 하는 공통의 효능이 있습니다. 또한 강한 향을 발하는 성분이 위장의 막힌 것을 뚫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화를 돕는 공통의 효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운향과 과일들의 껍질이라면 버리지 마시고 잘 말려두고 차로 다려 먹을 것을 권해 드리는 바입니다. 다만 방부제를 쓴 것들은 사절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걷이 철입니다. 가을밤이 깊어 가며 쌀값폭락으로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 갑니다. 하지만 건강을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건강을 잃지 않아야만 언젠가는 다가올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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