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쌀 사업, 쌀 품목별연합회로 실타래 풀어야

전문가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 정부·농협, 각자 해법 모색해야

  • 입력 2016.10.28 11:35
  • 수정 2016.10.28 15:22
  • 기자명 박경철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24일 전북 농민들이 쌀 지원 특별예산 150억원을 무산시킨 농협 전북본부를 성토하기 위해 나락을 적재했다. 농협 전북본부는 건물 앞에 생명창고를 지키는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을 기록한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이 적힌 비석을 세웠지만, 농민들의 성토가 빗발치는 농협의 행보는 그 뜻이 무색해보였다.

농협 수매가를 둘러싼 농협과의 마찰이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며 쌀값 폭락에 시름하는 농민들의 상실감이 배가되고 있다. 농민들은 “농협이 어떻게 하면 손해를 보지 않고 쌀을 수매할지 눈치 보기만 급급할 뿐, 농민들이 고생스레 생산한 쌀 가격을 어떻게 보장할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수매가 줄다리기, 그 근본 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지만 일선에서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농협도 그 책임을 피할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농협은 쌀 유통량의 최대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전국 쌀 생산량 예상치는 420만톤이고 농협에선 180만톤을 수매하기로 했다. 무려 42.86%다. 게다가 농협이 가진 협동조합이라는 가치와 생산자 대표로서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농협 쌀 사업 문제가 출발선부터 어긋난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농협 사업구조 개편과 맞물린 지주체제 도입, 이른바 ‘시장논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효신 (사)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은 “농협이 양곡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풀지 않고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접근하고 있다”며 “협동조합이라면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집단적(공동) 방식으로 접근해야 되는데 농민이 생산하면 좋은지 나쁜지,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사업에 대한 근본적 접근방식이 이렇다보니 지역농협의 출혈경쟁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역농협RPC가 수매를 했으면 도정해서 부가가치를 높여 소비자에 전달해야 하는데 민간RPC에 경쟁적으로 투매하는 ‘고질적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결국 중간 유통단계만 하나 더 늘어난 꼴”이라고 비판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시장논리로 인한 농민 피해사례를 꺼냈다. 농약과 농자재, 기름, 사료도 계통구매로 농협이 엄청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비싼 값에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 정책위원장은 이와 관련 “중앙회, 지주회사, 각 지역농협까지 먹고살기 위해선 이윤을 남길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농협이 농협양곡이라는 자회사를 출범시키며 RPC를 지역농협의 출자 형식으로 인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 정책위원장은 “이전엔 쌀값과 수매량에 대한 문제를 지역농협에 직접 제기할 수 있었다면, 지역농협RPC가 농협양곡으로 넘어가는 순간 농민과 상인과의 거래가 돼 문제 제기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회장도 “현재의 지역농협 운영도 얼마나 수매하고, 어떻게 팔고, 정부에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운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불투명성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시장논리만 쫓다보니 정부 정책을 비판조차 못하는 농협의 현실도 문제로 제기했다. 또한 결국 쌀값 문제는 식량을 지키는 문제로 정부가 예산을 들여 풀어야 된다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이 회장은 “쌀은 상품이 아니고 주식이고 전기, 가스, 수도처럼 국민 생활에 필요한 공공재”라며 “정부가 수매를 농협에 떠 안겨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농협도 10년동안 수매를 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정부에 얘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를 보면 농협 쌀 사업이 장미빛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해법과는 별개로 농협차원의 해법도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쌀 품목별연합회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정책위원장은 “농협양곡이 농민들에게 쌀 제값을 받아줄 것이라는 것은 사기와 허상”이라며 “농협양곡을 지금 당장 되돌리기 어렵다면 농협양곡과 더불어 쌀 품목별연합회를 만들어 혼재하도록 한 후 농협양곡을 처분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시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