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마을회관 앞 정자에 걸터앉았다. 잘 여문 나락을 말끔히 거둬들이는 콤바인을 지켜보며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다른 한 손으론 이마에 맺힌 땀을 훑어 내렸다. 잠시 숨 좀 돌리는가 싶더니 콤바인이 드나드는 자리에서 베어 낸 나락을 한 곳으로 모았다. 탈곡한 벼로 가득 찬 콤바인이 경적을 울리며 논을 가로지를 때면 트럭 적재함 위로 올라가 톤백의 귀퉁이를 잡고 대기했다. 콤바인이 낟알을 쏟아내며 일으키는 먼지를 그는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얼굴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분명 땀일진대 눈물처럼 보였다. 농군으로 살아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주름, 구릿빛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의 땀이 눈가에 잠시 맺혔다. 톤백에 쌓이는 나락을 보며 누군가 건넨 “사진 원 없이 찍네”라는 말 한마디에 감춰두었던 넉넉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웃기고 슬픈, ‘웃픈’이란 말이 어울릴 법한 순간이 게 눈 감추듯 지났다.
고창농협은 수확기 벼의 우선지급금으로 3만원을 제시했다. 이른나락(조생벼) 당시 4만2,000원 수준보다도 1만원 이상 하락했다. 농민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우선지급금을 대의원총회를 열어 결정하자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농협은 농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선지급금 3만원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쌀값 폭락, ‘쌀 대란’ 현실이 나락걷이에 한창 바쁜 농민들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는 것이다.
땅의 정직함만을 바라보며 농투성이로서 일평생 살아온 고봉규(73, 전북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씨는 이날(19일)로 올해 지은 논 17마지기 추수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논 한 필지의 나락을 거둬들이며 그는 한동안 농로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은 온데간데없고 하한선 없이 떨어지는 쌀값 걱정, 산물벼로 내지 못하는 나락의 건조, 보관 등 이후 작업에 대한 불안함에 추수를 끝낸 현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하여, 일흔셋 농투성이의 삶은 버겁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쌀값이 3,000원 했던 30여 년 전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에 좋았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다. ‘쌀값은 농민값’란 말이 있건만 이는 30년 전보다 더 값어치가 없어진 농민의 비참한 현실을 반증하는 바, 이 말은 더욱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