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우리 집 나락 베는 날

  • 입력 2016.10.21 16:37
  • 수정 2016.10.21 16:39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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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앞들이 황금색으로 변해간다. 마늘을 캐내고 심은 이모작 나락이지만 나락은 충실하게 익고 있다. 참 보기가 좋다. 누런 황금색의 들판은 먹는 쌀로서의 역할이 크겠지만 이런 정서적인 영향도 크다. 이제 이 들판은 오늘 내일 정도면 수확이 끝나고 재빠르게 또 다른 색깔로 변신을 할 것이다. 벌써 일손 빠른 집은 나락을 베어내고 검은색의 거름을 내고 있다. 마늘을 심기 위해서다.

우리 집도 오늘 나락을 벤다. 아직 아침 안개로 나락이 젖어 있어 콤바인은 논둑에서 기다린다. 그 사이 마늘 하우스에서는 남편은 콤프레셔로 마늘에 바람을 집어넣어 한쪽, 한쪽 분리가 쉽도록 한다. 나는 재빠르게 그 마늘을 까고. 예전에는 생으로 마늘씨를 까려면 손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동원된 것이 화투장, 작은 스푼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마늘에 상처를 내기가 마련이다. 아무리 신경 써서 해도 그렇다.

콤프레셔의 힘찬 바람으로 마늘을 한번 불어주면 마늘쪽들은 일제히 벌어진다. 마늘쪽 분리기라는 기계도 기술센터에서 임대가 되긴 하지만 씨에 대한 절절한 맘이 있어 기계를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아직은 동네 할머니들의 손을 빌리고 있지만 그 어른들의 손도 구하지 못하면 기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오고 가는 농로에는 검은 망에 타작된 나락들이 널려 있다.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나락가마니를 만지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나락의 무게는 건장한 장골이가 아니고서는 감당이 안 된다. 동네에 조금씩 농사짓는 어른들은 그래서 물수매를 댄다. 타작을 해서 말리지 않고 바로 RPC에 파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RPC에서 이모작 나락은 가지고 오지도 말라고 한단다. 그럼 우짜라고, 우리는!

이제 콤바인이 논으로 들어가 착착착 잘도 베나간다. 나락 값이야 똥값이던 말건 간에 이 순간만은 농민에게는 행복한 순간이다. 온갖 가지 수확을 하지만 나락 수확은 또 다른 의미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밥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똥값인 나락 값에 분노를 안 하고 웬 사설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모작이라서 ‘이미 마늘로 나락 값을 빼 냈으니…’ 하는 나만의 안도감! 그 부분도 클 것이다. 정말 이 정도의 논에 나락 농사만 지었다면 정말 우리는 버틸 수가 없다. 더 이상 농민으로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나락 베는 논을 두고 나는 달려와 점심을 한다. 큰 일하는데 점심 준비도 단단히 해야 한다. 이런 저런 잡다한 것을 챙겨 바구니에 담아 논으로 차를 몰고 간다. 나락 벤 한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상을 차린다. “점심 잡수소!” 큰소리로 부르니 콤바인도 서고, 사람들이 온다. 이렇게 한 끼의 밥은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맛나게 먹는 모습만으로도 내 배가 부르듯 하다.

나는 한 끼라도 밥을 안 먹으면 섭섭해서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맛있는 거 많은데 왜 꼭 밥을 먹어야 하냐고 한다. 그러나 나는 밥이 들어가야 다른 맛있는 것도 제 맛이 느껴진다. 정부 말대로 밥을 안 먹어서 쌀값이 이리 떨어진다는데, 제발 좀 내 반만이라도 밥 좀 잘 드셔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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