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젖은 참 젖

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 입력 2008.03.23 16:45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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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오늘 아침도 나는 분주하다. 5학년 딸아이와 2학년 아들을 학교에 챙겨보내고 그 다음 남편 출근시키고, 소 밥주고 달려오면 5달 된 딸 효은이는 눈물 콧물 달고서는 보행기로 방문을 박고 있다. 그런 아이를 들썩 안고 쓰린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가슴을 걷어 제친다. 운다고 목이 말랐는지 효은이는 달게 젖을 삼킨다. 뻣어나오는 젖줄기를 감당 못해 사리에 걸려 캑캑 거린다. 그리곤 평온한 얼굴이 되어 젖을 빨며 눈을 감는다.

20마리 되니 소값 폭락사태

내 나이 40이다.

두 아이를 왠 만큼 키워놓고 나니 셋째 이야기가 농담 삼아 오고 갔다.

“소 한 20마리만 되면 셋째 낳아도 안 되겠나”

“그 정도면 마늘농사도 안 지어도 되겠제”

그때는 소 20마리만 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하기사 그때는 암송아지가 3백만원을 웃돌았으니 말이다. 그 호시절을 우리는 소 불리기로 다 흘러 버렸다. 막상 20마리가 되니 소값은 턱없이 떨어졌고 또 사료값은 천청부지로 올랐다. 도저히 어쩌지 못해 남편은 작년 겨울부터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며 봉양한우작목회에서 시작한 정육점으로 출근을 한다. 이렇게 우리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젖 물고 잠에 떨어진 효은이를 최대한 움직임 없이 자리에 눕혀 놓고 다시 나는 일복을 갈아 입는다. 맘이 급하다. 차를 몰아 동네 꼬불길을 지나 마늘논으로 나간다. 놉을 해서 마늘올리기를 했으나 갓돌이를 해야 한다. 정신 없이 한다. 아이가 잠자고 있을 때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 맘은 또 얼마나 불안한지...

장에 갔다 오시던 동네 아지매께서

“새댁이요 아는 우야고 들에 나왔노”

“자니도”

“아가 먼저지, 일은 나중에 해도 된데이. 빨리 들어가거래이”

마늘논에서 부부가 함께 여유롭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정작 남편과 함께 일 할때는 일을 이렇게 하라니 저렇게 하라니 하면서 티격태격했던 일도 그립기만 하다.

우리부부에게도 빨리 저런 일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저 그런 농부의 일상이...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든다. 그전과는 상황이 너무도 안 좋아졌다. 투쟁의 대상이었던 한미FTA가 내 삶에 이렇게 깊이 박혀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안일한 소견이었다.

마늘논 한망의 갓돌이를 끝내고 더 하고 싶은 욕심은 생기지만 효은이가 걱정되어 다시 차에 올라타고 생 내달린다. 흙 묻은 바지와 양말을 벗어 제기고 뛰어 들어가면 효은이는 그새 깨어서 콧물눈물 뒤범벅이 되어 요를 정신없이 빨고 있다.

왜 이럴 줄을 생각을 못 했을까! 두 아이를 이렇게 키워놓구선. 그 새 까먹고 셋째 생긴 것에 신기해만 했었다. 그전에 단도리를 제대로 못한 나의 책임도 크다. 농사를 짓는 어미의 심정으로 생긴 아이를 또 어떻게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사람들은 전부다 내 용기가 대단하단다. 나이 40에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다니...

“우리 아이들 키우는 농사”

효은이는 또 다시 평안한 얼굴이 되어 젖을 빤다. 엄마의 참젖을 먹은 효은이의 볼은 물오른 봉숭아 마냥 빨가니 오동통하니 젖살이 올랐다. 평소에는 계란 후라이 만도 못한 가슴이 아이만 생기면 이렇게 제 구실을 톡톡히 한다.

이제는 엄마를 알아보고 제법 방긋방긋 웃는 효은이의 얼굴을 보면 만 시름을 잊게 한다.

그래 나는 농사를 지어서 이 세 아이들을 먹여 키워야 한다. 비록 돈은 안 되지만 우리아이들을 먹여 키울 수는 있는 농사다. 그것도 내 손으로 키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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