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은 기업의 ‘봉’인가

  • 입력 2016.10.21 13:27
  • 수정 2016.10.21 15:06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환 변호사

시장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생산이 고도화 되고 자본집약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소수 기업들의 횡포와 전횡을 막고 소비자를 보호할 제도적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우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운영하면서 전담기관으로 공정거래위원회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민이라고 하면 농사를 지어서 수확하는 생산자로 이해한다. 그러나 소농 및 가족농 구조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농민 개개인은 농사를 짓기 위해 종자, 비료, 농기계 등을 구입해야하는 개별 소비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작년 5월 농기계 가격을 서로 협의해 가격을 정한 동양물산기업 등 5개 업체에 약 234억 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농기계업체들은 이러한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최근 공정위가 농기계업체인 동양물산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처분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농업관련 기업들의 담합행위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공정위는 2012년 남해화학 등 12개 화학비료업체가 농협에서 발주한 입찰에서 사전에 물량 및 투찰가격 등을 담합한 혐의로 약 828억 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한 경험이 있다. 이 역시 비료업체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농기계업체나 비료업체 모두 담합기간이 수년에 이른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종자는 물론이고 비료와 농기계 모두 구입해야 한다. 농민들이 농자재를 구입하는 방식은 각자 업체를 통해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대다수 농협을 통해 구입해 왔다. 즉, 농민들을 대신해 농협이 농기계업체나 비료업체와 협상을 통해 가격 등을 결정하고 농민들은 이렇게 결정된 가격으로 해당 농자재를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협상력이 약한 개별 농민을 대신해 농협이 나서서 기업들과 협상을 통해 농자재 가격을 결정하면 농민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취지는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문제는 농민의 입장을 대변해야할 농협이 동시에 공급자이고 농협 역시 농자재 매매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수취한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 구조에서는 소비자인 농민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농민의 피해는 단순한 재산적 손실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농민이 비료나 농기계를 구매하는 자금에는 보조금 등 상당부분 정부의 정책자금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자금은 당연히 농업인과 농촌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담합행위로 오히려 비료나 농기계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되었다. 사실 기업들의 이러한 담합행위로 인한 세금의 손실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는 우리 농촌·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우선적으로 펼쳐야 한다. 하지만 이에 소요되는 비용과 자금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정작 이러한 사업과 정책의 혜택이 농민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확인하고 모니터링 해야 할 것이다. 농민은 더 이상 기업의 ‘봉’이 되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