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가치, 사회가 비용을 지불한다

공공재 생산 농민 소득 현저히 낮아 … 사회적 책임으로 확대
2013년 공동농업정책 직불금 개혁, 화두는 ‘농업농촌 지속가능성’

  • 입력 2016.10.15 11:57
  • 수정 2016.10.16 23:1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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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국내 직불금이 개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불제의 목표가 불분명하며, 농가소득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고, 쌀에 편중돼 있다는 비판이 대략적인 개편 이유다. 세계의 사례에 시선을 돌려보자. 농업선진국 유럽연합(EU)의 직불금은 농가 총소득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만 지난 2013년 또 한 번의 변혁을 시도했다. 농가의 소득지지로서의 직불제는 남기되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상’을 추가한 것이다.
EU 직불제의 혁신에 우리 직불제를 투영해 시사점을 찾아본다. 

EU의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은 대내외적인 변화에 따라 여러차례 개혁, 발전해 왔다. 특히 직불제는 CAP의 핵심정책으로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개혁의 주요대상이었지만, 여전히 CAP 전체 예산의 3분의2를 직불제에 할당할 만큼 대표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농업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을 중심으로 농업소득이 낮은 부분에 대해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개념이다.

지난 2000년에 유럽연합은 직불금을 크게 2개의 기둥(체계)으로 나누었다. 1기둥은 직접지불제도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직불금’ 개념이고, 2기둥이 농촌발전, 가치에 대한 ‘지불제’이다. 1기둥인 직접지불제에 농업예산이 더 많이 투입되는데, 독일의 경우 EU와 연방정부의 농업예산 중 직접지불제 비중이 43%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2기둥인 농업환경에 대한 가치 ‘지불’ 은 그 중요성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의 한 농민이 딸기농장에서 딸기를 수확하고 있다. 프랑스 외무부 제공

2013년 CAP 변혁, 농업에서 농촌까지 직불제 범주 확산

2013년 말 EU는 CAP 중 직불제의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하는 CAP는 직불제 중심의 1기둥과 농촌개발 중심의 2기둥 체제는 그대로 둔 채 △농가단위 직불제 혹은 지역단위 직불제를 기본직불제로 개혁하고 △녹색화, 젊은 농민에 대한 지원, 소규모 농민 지원 등의 개념을 새로 도입하면서 △농민들의 교차준수의무(환경적, 식품안전적, 동물복지형 생산 등)를 강화 했다. ‘생산중심’적 정책에서 ‘농가 지원’ 정책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둔 것이다. 농업이 생산하는 각종 공익적 기능을 환경보전과 유지라는 측면과 연계해 ‘녹색화’라는 개념을 직불제 개혁의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직불제 실시의 근거를 농민 소득문제라는 협의의 직불제에서 사회적 범주로 이끌어냈다는 면에서 크게 평가 받고 있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2013년 CAP 개혁은 농업경쟁력을 향상하되 단지 시장에서의 상품가격 품질이라는 협의의 경쟁력이 아니라 농업분야 전반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변화 등에 대한 대응능력을 총체적으로 향상시키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이를 위해 품질향상 뿐 아니라 로컬푸드 체인 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농촌지역의 일자리와 균형발전에도 주안점을 뒀는데 농촌지역의 발전이 단지 몇몇 기업을 유치한다거나 농민들의 소득상승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을 하는 것이 핵심이라 봤다. 농촌지역간 균형발전에도 일조한다는 설계다.

소비자 ‘농업=공공재’ 인식 높이고, 농업인 ‘준수의무’도 강화

안병일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2014~2020 CAP가 추구하고자 하는 3대 목표는 실행 가능한 식량생산, 자연자원에 대한 지속가능한 관리 및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역내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농산물 과잉생산, 농업의 환경에 대한 도전, 예산 부담 증가 등의 문제는 비단 EU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라고 개혁의 배경을 짚었다. 안 교수는 무엇보다 “환경적인 공공재를 생산하는 주체가 농업이고 이러한 공공재를 생산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써, 혹은 이러한 공공재를 보다 효과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은 매우 획기적”일 뿐 아니라 “여전히 농가소득지지나 시장수급 및 가격 안정이 농정의 주요 목적인 우리나라 농정철학을 마련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라고 덧붙였다.

농업정책에 있어 직불제의 이같은 시각전환은 사회적 의식전환이 전제됐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은 농업 외 각계각층의 주체와 소통하면서 정책을 다듬었다. 아울러 농민들에게 ‘준수의무’를 부과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사회적 부담 비용에 대한 책임을 강화했다는 뜻이다.

이명헌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는 유럽연합에서도 세계화,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식량안보가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면서 “왜 농업생산활동에 납세자의 돈을 지불하는가에 대해 시장에서는 (제대로)대가를 받을 수 없는 공공재에 대한 대가라는 논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으며, 그 공공재 중 EU사회의 지지를 가장 폭넓게 받고 있는 것이 환경과 자원 보존 기능”이라고 시사점을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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