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작에 대한 어머님과 나의 갈등

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27

  • 입력 2008.03.23 16:29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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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돌도 키우는 모양이다. 작년 봄에 두 번이나 골라내고 참깨며 콩을 심었던 자리를 올해 경운을 하니 또 그만큼 굵고 많은 돌들이 튀어나온다. 언젠가 병국이 형이 돌 튀어나오는 것이 겁나 경운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 밭돌은 굵기도 잘 한다더니 우리 밭돌도 해마다 많이 굵어지는 것 같다.

“올해는 고구마를 좀 마이 숭구믄 어떡캤노? 근년 고구마 맛이 참 희한하더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복숭아나무 사이에 상추와 도라지 씨를 뿌리던 어머님이 땅바닥에 펑퍼져 앉은 채로 물으신다. 나는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어 허리를 펴고 복숭아밭을 둘러본다. 2년을 키운 나무는 간작이 어려울 정도로 커서 망설여진다. 한두 이랑 정도 메주콩을 심을 공간을 빼면 SS기가 다니기에는 불편할 것아 나는 간작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한다. 그러면 어머님은 당신 방 어딘가에 갈무리 해놓은 팥이며 파, 검정 콩, 시금치, 율무 같은 종자들이 밤마다 발아하고 싶어 하소연을 한다고 얼마나 나를 들볶을지 모른다. 그러다간 종내는 내가 없는 틈을 타 나무 사이 여기저기 그것들을 파종해 수없이 내 발길에 짓밟히게 할 것이 뻔하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허락된다면 무슨 종자라도 넣어두어야 직성이 풀린다. 여든이 넘은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이를 땅바닥에 질질 끌면서도 어떻게든 종자는 놓지 못하신다.

“야야, 복상나무를 몇 개 비 내디라도 요거조거 묵을 거리는 숭가야지, 사 묵을라카믄 그 돈이 얼매고. 마 몇 나무 비 내뿌라.”

암만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어머님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늘 그렇듯이 이럴 경우 나는 묵비권을 고수한다. 복숭아 이외 모든 먹을거리는 사다 먹어야 한다는 내가 어머님 눈에는 참 한심한 돌팔이 농사꾼으로 비칠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어떻게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제 손으로 길러내지 못하고 사다 먹느냐고 한심해 하신다. 그런 어머님께 나의 경제논리는 바늘 끝도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일용할 것들을 짓는 데에 경운을 하고 이랑을 짓고 비닐을 사고 농약을 쳐야 하는 제반 경비만으로 나는 그것들을 사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님은 그렇더라도 지어야 한다고 강변하신다. 하기야 그런 자세가 진짜 농사꾼의 도리일 것이다.

“니 올게 또 풋꼬치 따 묵을 것도 안 숭굴 작정이가?”

도라지 씨를 넣은 자리에 비닐을 덮어 받침대로 눌러 놓은 후 어머님이 경운기 적재함에 걸터앉으며 불쑥 물으신다.

“풋고추 묵을 거 다섯 포기면 되는데 그거야 안 심은 해가 언제 있었는기요?”

“아이고 더럽어라. 숭굴라카믄 오십 피기는 숭가야지 다섯 개가 머꼬.”

“다섯 포기에 달린 것도 다 못 묵니더.”

“다 몬 묵으믄 붉은 꼬치 따지.”

“붉은 고추 딸라카다가 약값이 더 드니더. 올해 또 고추모종 사 오지 마이소.”

나는 오래 전 우리 집 ‘고추사건’을 떠올리며 단단히 못을 박는다.

집 뒤 밭에 물려받은 능금나무를 베어내고 포도를 심었다가 2년 농사 끝에 걷어낸 뒤 복숭아나무로 바꾸고 3년인가 지난 해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밀식이라 도저히 더 이상은 간작이 어려운 형편인데도 어머님은 고추를 심어야 한다고 내 얼굴만 보면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장에 가서 고추모종을 몇 판이나 사 가지고 오셨다. 나는 차라리 내 등에다 심으면 심었지 자리가 없다고 내버려 두고 본체만체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밖으로 나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님이 노망이 들고 말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치자 그만 아득해졌다. 밭에 내고 제법 몇 경운기 남아 있는 소똥 퇴비 무더기 위에 고추모종이 자옥하게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며 고추모종이 심어져 있는 거름더미를 이윽히 둘러보다가 생각을 수정하여 이건 할마시의 시위라고 단정을 내렸다. 시위가 아니라면 어떻게 거름더미 위에다 모종을 한단 말인가.

“중기 니 올해 부자 될따. 꼬치가 팔뚝만한 게 안 열리겠나.”

어떻게든 내가 모종을 처리하지 못한 불찰을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는데 앞집 태환이 형님이 그 풍경을 보고 흐물흐물 웃으며 지나갔다. 고추모종을 뽑아내자니 심을 곳이 없고 그냥 두자니 동네 웃음거리가 될 터이라 나는 그 자리에 오래 장승처럼 서 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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