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쌀값은 농민 값, 쌀은 곧 민주주의!”

  • 입력 2016.10.09 10:07
  • 수정 2016.10.09 10:23
  • 기자명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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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헌중 (재)지역재단 상임이사

꼭 3년 전 이맘때, 2013년 11월 22일 농민 2만여 명이 농민운동 연대체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깃발 아래 서울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다. ‘쌀 목표가격 23만원,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등 10대 요구안을 내걸고 “쌀값은 농민 값, 쌀은 곧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 3년 뒤 오늘, 어김없이 쌀값대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과잉재고와 가격폭락을 뻔히 내다보고도 뒷북에 생색만 내다 이젠 아예 과잉을 빙자,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해제에 나서는 등 투기꾼에게 국민 생명줄을 던져주는 데 혈안이 된 듯하다.

한번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비극적으로 반복된다 했던가. 4대강 사업 국민사기, 자원외교 사기, 법인세 인하 부자감세 등 국민을 기망한 MB 정부의 흑역사는 ‘민생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으로 국민을 기망한 현 정부로 이어진다. ‘경제민주화’ 폐기, ‘기초연금 모든 노인 20만원 지급’ 허위 공표, 4대 중증질환 100% 국가보장 공약 파기, 그리고 마침내 80kg 쌀값 21만원 인상 공약 폐기로 그 비극의 흑역사는 반복된다.

무분별한 쌀 수입과 재고관리 실패로 쌀값대란을 자초한 정부는, 오로지 소비감소-생산과잉-생산조정-농지전용만 외고 있다. 농민 탓, 소비자 탓만 외며 소비대책, 생산조정을 논하기 전에 장단기 대책을 적시에 단행해 당장의 급한 불을 먼저 꺼, 농민과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최근 산지 쌀값이 80kg 가마당 96,000원을 밑돌기도 하는 등 산지투매-가격폭락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더 이상 농민들을 고통 속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에겐 농민에게, 국민에게 그가 늘 달고 사는 ‘신뢰’를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다. 어찌해야 진정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나.

첫째, 5년 전 정부 스스로 세운 ‘자동시장격리’를 즉시 단행해야 한다. 현재 우선지급금 벼 40kg 45,000원에 36만톤의 공공비축미 수매계획을 전년 확정가 52,260원에 최소 100만톤으로 바꿔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백약이 무효다. 둘째, 수해에 식량난을 겪는 북한동포에게 탈출하라는 선전포고보다 식량구호용 최소 50만톤을 긴급 지원해야 한다. 그들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모니터링을 위해선 세계식량계획을 통하면 된다. 지금이 적대 속에서도 긴장완화의 물꼬를 틀 적기가 아닌가. 셋째, 국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과 복지시설급식에 다양한 쌀가공품(쌀라면, 쌀빵, 쌀국수, 쌀쿠키 등)과 멥쌀을 사회복지용으로 긴급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가뜩이나 열악한 식생활 속의 어려운 민생도 안정시키고 쌀 소비패턴도 개선시켜야 한다. 넷째, 재고미의 25%를 차지하는 수입쌀의 시장격리와 밥쌀 수입 중단이 시급하다.

이러한 긴급대책들을 전제로 한 뒤, 쌀농사 소득에 준하는 직불금 지불을 통한 식량작물·사료작물로의 일시 전환(생산조정과 식량자급률 제고)이나 소비진작 대책 등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마땅한 긴급대책과 장단기대책 없이 농민과 소비자 탓만 하는 것은 현 정부의 전형적 수법인 유체이탈형 책임회피다.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할 비극의 역사다.

다시 3년 전 이맘때 우리 농민은 선언한다.(한도숙 칼럼, ‘쌀 팔러 청와대 가자’) “쌀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농민들이 스스로 쌀값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천년 쌀농사를 지으며 가을이 되면 민주적 원칙에 따라 쌀의 가치를 결정하고 쌀을 나누었다. (중략) 22일은 장날이다. 청와대로 쌀 팔러 간다. 박근혜의 농업정책을 끝장내고 평화와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호남 펄의 쌀이, 김해 펄의 쌀이, 내포 펄의 쌀이 우르르 일어난다. 쌀이 제대로 일어나면 평화롭다. 쌀이 제대로 일어나기만 하면 민주주의도 일어난다.”

어쩌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농민들만큼 하늘과 가까운 사람이 없는 만큼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곧 천벌이 선고됐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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