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도매물류센터에 휘청대는 지역농협

시장확대보다 기존판로 잠식 … 조합장들 농협경제사업 ‘맹성토’

  • 입력 2016.10.07 14:55
  • 수정 2016.10.07 15:22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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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농협경제지주는 지난해 9월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농공단지에서 ‘농협 밀양물류센터 개장식'을 개최했다. 농협은 밀양물류센터에서 영남권 농산물 판매물량의 80% 이상을 영남권에서 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2013년 8월 안성농식품물류센터(충청권)를 개장했다. 농협은 당시 “(안성센터에서) 2020년 우리나라 청과 총 생산액의 20~25%인 2조원 가량의 물량 취급이 목표”라며 “농협 도매조직을 통한 농산물 공급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협은 안성을 포함해 2016년까지 밀양(영남권), 횡성(강원권), 장성(호남권), 제주를 포함한 5개 권역별 도매물류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며 농산물 도매사업 7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사업이 지연되며 지난 9월에야 밀양 물류센터를 개장했다. 장성에 짓는 물류센터도 2018년에야 완공될 전망이다.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곳은 안성과 밀양 센터뿐이다.

권역별 도매물류센터가 개장하자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각 지역농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일원화하고 규모화해서 잘 팔아주겠다는 얘기로 이해했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상부구조가 하나 더 생기며 수수료 부담을 떠안은 데다 지역농협이 애써 구축한 시장까지 뺏기게 됐다는 것이다.

경북의 한 지역농협 A조합장은 “기존에는 산지농협이 도시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에 직접 납품을 했는데 회원농협의 농산물 판매유통에 힘써야 할 밀양 물류센터가 오히려 기존 판로를 두고 경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농협중앙회가 도시 하나로마트의 계통구매를 유도하다보니 판로확보 또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 조합장은 권역별 도매물류센터를 반드시 거치게 되면서 물어야 하는 4%의 수수료도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전북의 한 농협 B조합장은 “권역별 도매물류센터가 농협중앙회의 또 다른 갑질로 자리잡고 있다”며 “예전에 백화점에 비싼 수수료를 내고 납품하던 현상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권역별 물류센터가 들어서며 생긴 대형마트로 인해 지역농협이 공판장 출하로 직거래를 하던 판로까지 막힐 판국이라는 점이다. 결국 권역별 물류센터가 시장확대는 소홀히 하면서 기존 시장을 잠식하다보니 지역농협이 농협경제지주에 종속되며 수직계열화되는 구조가 된 셈이다. B조합장은 “결국 권역별 도매물류센터가 농협경제지주의 수익창출을 위한 하나의 사업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렇다보니 산지농협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점점 더 줄 수밖에 없다.

A조합장은 “권역별 도매물류센터가 회원농협에 전혀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방적 요구에 맞춰야 되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산지 물류기능 강화를 위한 지원이나 도시 소비자에 지역농산물을 팔기 위한 지원이 더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권역별 도매물류센터 등 농협경제사업에 혀를 내두르며 위기감을 표한 이유는 더 있다. 신용사업에 어려움을 겪어온 지역농협이 어떻게든 운영을 이어가고자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해온 가내수공업 형식의 쌀·잡곡 등 소포장 가공사업까지 농협경제지주가 넘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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