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백남기 농민 영전에 드리는 글

  • 입력 2016.10.07 14:42
  • 수정 2016.10.07 14:45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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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오늘도 태풍 영향으로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 가을 잦은 비에 추석대비용으로 우사를 치웠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사는 또 죽탕입니다. 어린 송아지들이 있어 맘이 많이 안 좋습니다. 남편에게 우사를 치우자고 닦달하지만 소똥이 퇴비장을 가득 채워 나갈 곳이 없다 하네요. 마늘 논에 이 퇴비들이 나가야 할텐데…. 소밥을 주고 마늘 하우스로 가니 낡은 하우스 비닐이 찢어져 군데군데 비가 샙니다. 응급처방을 하고 남편은 또 늦었다며 내달립니다. 서울행입니다.

백남기 어르신, 저는 아직도 조문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쓰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요. 다치신 이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을 지켰고, 지금은 또 장례식장 앞에서 어르신의 온전한 영면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 연일 부검 영장이 청구되면서 남편은 예고 없이 집을 비워 저까지 집을 비울 맘을 못 내면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작년 11월 14일 저도 서울에 갔었습니다. 연로하신 어른들을 모시고 가서 혹여라도 길 잃으실까 걱정으로 대회에는 제대로 참여도 못하고 일찍 버스를 탔습니다. 한참 돌아오는 길에서 핸드폰으로 어르신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다 되어 갑니다. 같은 농민이 공권력이 휘두른 물대포 직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이젠 돌아가신 상황에서 농민들은 여전히 쫓기는 농사일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씨 뿌려 놓으시고 간 밀은 주인의 손이 없어 수확의 양은 많이 줄었겠지요? 그렇게 마지막으로 뿌리신 우리 밀은 좋은 빵이 돼 우리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어르신, 우리 농민들이 농사일에 바빠 많이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너무 섭섭해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이 농사를 지키는 것이 곧 어르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임을! 그러나 많은 농민들이 저처럼 한 쪽 가슴이 항상 먹먹한 상태입니다.

그 가슴을 안고 저는 오늘도 마늘 하우스에 앉아 마늘 톨을 자릅니다. 이제 곧 논으로 나가 심겨질 마늘 씨를 장만하고 있지요. 동네 어른들은 걱정합니다. 이런 가을 날씨로 마늘 심기를 할 수나 있을지. 갈수록 날씨는 농사짓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저희 같은 젊은 사람들 농사짓는 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자고 하셨다던 백남기님! 그 울타리가 우리들에겐 너무나 절실한데….

오늘 글쓰기가 무척이나 힘드네요. 원고독촉을 받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글은 자꾸만 막히고 끊깁니다. 아직 편히 영면하시지 못한 고인에 대한 죄송함이 큰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백남기 농민님의 편안한 영면을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괴물이 사는 나라가 아닌 사람이 사는 나라임을 보여줘야겠지요. 그리고 말로 설명 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의 농민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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