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읍내 자전거포 ③] 자전거 도둑

  • 입력 2016.09.30 11:53
  • 수정 2016.09.30 11:5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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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서천의 나태수 씨는 자신의 집 앞 가건물 한 칸을 자전거포로 세를 주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자전거포를 꾸려가던 사람이 그만 손을 털고 나가버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자신이 자전거 대리점의 점주가 된 것이다. 그는 우선 기술자 한 사람을 고용해서 필요한 기술을 익혔다는데, 만나자마자 그가 대뜸 내게 물었다.

“자전거포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술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뭣인 중 알어유?”

“그거야 물론 ‘빵꾸’ 때우는…”

“아이고, 빵꾸 때우는 요령은 담배 한 대 필 참이면 배워유. 젤로 어려운 것은 림을 잡는 것이라니께유.”

림(rim)은 자전거의 테이다. 그 테에다 살을 끼우는 작업을 ‘림을 잡는다’라고 말한다. 공장에서 새 자전거를 들여올 때 조립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자전거포에서 일일이 바큇살을 꿰어야 한다. 일반적인 자전거의 경우 바퀴에 꿰는 살이 앞쪽은 32개, 뒷바퀴에는 40개가 들어간다. 뒤쪽에는 짐을 싣기 때문에 8개의 살이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자전거 살을 꿸 때에는 지그재그로 엇갈리게 꿰어야 한다.

살을 다 꿰고 나서 바퀴를 돌렸을 때 ‘차르르르…’ 하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달카닥달카닥…’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잘 못 된 것이다. 다시 꿰어야 한다. 자전거를 오래 탄 사람이라면 시운전을 한 번 해보고서 자전거포 주인의 실력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조립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승차감이 각각 다르다.

‘자전거 도둑’은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비토리오 데시카’가 1948년에 흑백으로 만들었던 영화제목이다.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던 자전거를 도둑맞은 주인공이, 축구 경기장 앞에 놓인 남의 자전거 한 대를 훔치다 들켜서 봉변을 당한다는 내용인데, 당시의 빈민들에게 자전거는 식구들의 생계가 달린 소중한 재산이었다. 나태수가 지전거포를 처음 시작했던 1970년대 초의 우리 농촌 역시 자전거가 큰 재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둑질을 당하면 사람들은 일단 경찰지서에 신고를 하지만 지서의 순경들이 찾아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준 사람은 대부분 자전거포 주인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조립할 때마다 노란 플라스틱 딱지를 끼워서 표시를 해놨는디, 전문적인(?) 도둑놈들은 귀신같이 알고는 다 부숴버린다니께유. 그래도 내 가 판 자전거를 알아보는 방법이 따로 있시유.”

림에 바큇살을 꿸 때 자전거포 주인마다 꿰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금세 알아본다는 것이다. 한 번은 우체국에 다니는 김 주사가 새 자전거를 끌고 와서는 바람이 자주 빠진다면서 손봐 달라 하였다.

“딱 보니께 우리 가게에서 사간 자전거가 맞구먼유. 부속을 몇 개 바꾸기는 했지만서두.”

“뭔 소리여? 내가 언제 자네 집에서 자전차를 샀다는 것이여!”

김 주사가 펄쩍 뛰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원 주인과 언제 어디서 샀느냐, 그 자전거포에 가서 삼자대면을 해보자… 이렇게 한참 실랑이를 한 끝에 끝내는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김 주사는 곱게 돌아가지 않았다.

“공짜로는 못 돌려 주겄구먼. 내가 돈 들여서 몇 군데를 고쳤으니께, 다문 얼마래도 수리비를 받어가야 쓰겄어.”

자전거포 주인 나태수 씨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어린이날이다. 한 달에 열 대를 팔까말까 할 정도로 파리를 날리는 게 시골읍내 자전거포의 형편이었지만 어린이날엔 하루에도 예닐곱 대씩이나 팔았다. 어린이날 말고도 기대를 걸만한 때가 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성적을 발표하는 날이다. 그래서 가끔 인근의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자전거포에 들르면 돼지고기도 사주고 막걸리도 사주면서 이렇게 부탁했단다.

“선생님, 지발 이번에는 시험 문제를 좀 쉽게 내 줘유. 우리도 조깐 묵고 살자니께유.”

지금 그런 접대를 했다간 ‘김영란법’으로 여지없이 처벌받을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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