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당몰댁의 버킷리스트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당몰댁의 버킷리스트
  • 심문희
  • 승인 2016.09.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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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감잎이 손톱만 해지면 호박씨를 넣어야 해.” 당몰댁 할매는 모르는 게 없다. 추석을 전후로 마늘을 심고 가을무에 김장배추 당근 등 줄줄이 가을채소를 심는다.

보리와 밀을 뿌린 곳엔 내년 봄 콩이 심어질 것이다. 이어심기, 섞어심기, 돌려심기 등 여러 농사법도 척척 날씨 변화만으로도 비가 올지 해가 뜰지 가뭄이 들지 장마가 길어질지 족집게처럼 알아맞히고 귀신처럼 알아내는 당몰댁 할매 농사박사님!

농사경력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나는 아직도 젬병이다. 지나다니다 어쩌다 그녀의 텃밭을 제때에 포착하는 해엔 덕분에 때를 맞출 수 있고 그러지 못 한 해엔 새끼손가락만한 당근 정도나 겨우 수확을 하니 여성농민이라는 명함을 내밀기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전통지식! 그녀들의 엄마에게서 딸들에게로 때로는 며느리에게로 수천 년 동안 전해져왔을 농사의 지식들은 당연히 농부에게서 농부에게로 전해져야 하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그 가운데에 농기업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씨앗장사, 비료장사, 농약장사, 농자재장사, 농기계장사 등 그 가짓수도 다양하다. 씨앗봉투 뒷면엔 남부지방은 언제까지 심어야하는지 그 씨앗의 특성이 어떤 건지 깨알같이 적혀있다.

틀림없이 그녀의 전통지식과 씨앗이었을 것이다. 굶어죽어도 베개잇속에 넣어두며 수천 년을 이어온 씨앗들은 이제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다 쓸 수 있는 상품이 되어 전통지식과 함께 진열돼 있으며 누구도 그녀에게 물어오는 이 없으니 그녀의 지혜는 어느덧 쓸모없는 것처럼 취급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야 다시 그녀의 지혜를 이어가기 위해 쉴 새 없이 여쭤본다. 단 한 번도 지겨워하지 않고 가르쳐 주신다.

“요런 것이 뭔 쓰잘데기가 있는지 모르것는디 기왕지사 배우기로 한 거 내 죽기 전에 다 익혀두드라고.” 물론 두부를 만드는 법이나 도토리묵을 맛나게 만드는 법 등은 덤이다. 늘 넉넉한 덤이다.

그런 그녀가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으신다. “오메 징헌년 호랭이는 뭐하나 그런년 안물어가고”, “짠해서 어쩐다냐”, “물대포 맞아 죽은 것도 서러운데 뭔 부검을 한다냐? 농민들 무식허다고 얕잡아 보는 거 아니여”, “글믄 사람이 죽으면 다 심장이 멎어서지 뭐여 아조 그년 모가지를 파악 삐뚜러 버려야혀”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욕들을 한바가지 내뱉으시더니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신다.

호미 들고 밭고랑 메 왔던 세월 따라 손가락이 휘고 무릎관절이 인공관절로 바꿔가면서까지 살아온 농부들의 인생이 해가 갈수록 고달픔이 더해지기만 한다. 30년 전 쌀값으로 떨어졌다니 고작 하는 소리가 30년까지는 아니고 27년 전 가격으로 떨어진 거라고 해명 한다.

“가만히 있응께 뭔 가마떼기 취급을 한당께. 에고 저승사자는 뭐하나 저 화상 좀 델꼬 가불제” 저승사자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농민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농민들의 지식이 기업의 것으로 돼버렸듯이 우리 삶 전체가 노예가 될 것임이 뻔하기에 걸어 다닐 수 있는 모든 이가 나서야 한다. 지팡이를 짚고 서라도 나서야한다. 아니 기어서라도 나서야한다.

“나도 꼭 델꼬가잉.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겁나게 많아져부럿네. 짐 안될텡께 꼭 델꼬 가야혀. 알긋제?” 몇 번을 다짐하신다. 농업이 천하의 근본인 세상, 우리 손으로 만들기 위해 모두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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