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백남기 농민은 국민이 아니었나?

사건발생부터 사망이후까지 … 철저한 모르쇠·책임회피·공권력 동원
국가 패륜 행위, 317일간으로도 모자랐나?

  • 입력 2016.09.30 11:25
  • 수정 2016.09.30 11:37
  • 기자명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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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 살수를 맞아 쓰러진 농민 백남기(70)씨가 의식불명 317일만인 25일 생을 달리한 가운데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촛불추모제에서 수많은 조문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촛불을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물대포에 의해 수차례 직사조준살수돼 사망에 이른 백남기 농민은 사건발생부터 사망 이후까지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인권과 존엄성조차 보호받지 못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지난달 27일 “고 백남기씨는 국가가 ‘원격’으로 살해한 최초의 한국 시민이다”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국가가 백남기 농민과 이 국가폭력사건을 대해온 정황을 살펴보면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까지 던지게 된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한 백 씨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쌀수매가 21만 원을 보장하라는 요구와 쌀값 폭락을 규탄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당시 집회 현장에서 백 씨에게 직사조준살수한 살수차 요원들은 살수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발로 밟을 수 있는 최대치를 밟았으며, 그 수압은 50층 빌딩까지 물기둥이 솟을 정도의 수치(2,800rpm)였다. 쓰러진 백 씨에게 총 7차례 직사조준살수 했음에도 사건 직후 경찰은 어떤 구호조치도 취하지 않아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 무려 44분이 걸렸다. 이날 경찰은 살수차 운용지침에 명시된 살수거리제한, 수압조절, 가슴이하 살수, 부상자 구호조치 규정 등을 전부 위반했다. 짧은 시간에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혹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국가폭력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무자비하게 자행됐던 것.

사건 다음 날 언론은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짓던 백 씨를 ‘전문시위꾼’으로 매도하며 그날 집회를 불법폭력시위로 몰아갔다. 박근혜 대통령과 강신명 경찰청장은 사과는 커녕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검찰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국회청문회 실시여론이 불거지던 6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고인의 딸 백민주화씨는 국제사회에 아버지의 상황을 알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사국 발언자로 나온 외교부 당국자는 “검찰이 철저히 수사했다”고 발언해 거짓말 논란을 일으켰다. 바로 전날인 16일 검찰이 살수요원에 대한 첫 피의자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사건발생 7개월 만에 이뤄진 첫 조사는 국제사회에 발언하기 위한 면피용이었을 뿐 이후 진상조사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사건을 대해온 정부와 수사당국의 태도는 ‘철저한 모르쇠’와 ‘마지못한 수사’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같은 달 2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출석한 강신명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사실을 언론에 보도된 걸 보고 모니터요원이 보고해줘서 알았다” “살수차운용지침은 지침일 뿐 현장상황에서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며 규정조차 자의적으로 해석해 공권력의 남용 소지를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일삼고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백남기대책위가 야당 당사 점거단식 끝에 이뤄낸 국회청문회에서도 강 전 청장은 “사람이 다쳤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인면수심의 발언으로 또 한 차례 가족들의 고통에 비수를 꽂았다.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던 피의자인 경찰은 백 씨의 사망과 동시에 부검 운운하며 기민하게 경찰력을 동원, 배치해 장례식장을 에워싸는 등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특검을 통해 ‘그날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지 않는 이상 이 나라에 더 이상 ‘국민’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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