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읍내 자전거포 ②] 자전거 뒷자리에 처녀를 태웠다

  • 입력 2016.09.23 15:15
  • 수정 2016.09.23 15:2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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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1960~70년대만 해도 아동용 자전거가 따로 없었다. 아니 혹 있었더라도 그런 건 시골 아이들의 몫이 아니었다. 옆에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 역시 아주 한참 뒤, 개화된 ‘문명세상’이나 되어야 등장한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 안달 난 시골아이들이 손발을 아예 놓고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섬마을에서 태어난 내가 육지에 나갔다가 구경한 장면 중 가장 기이한 것은, 배꼬마리에 피도 덜 말랐을 쬐끄만 녀석이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모습이었다. 안장에 올라타 봐야 두 발이 페달에 미치기는 어림없었으므로, 아이들은 자전거의 뼈대를 이루는 파이프가 만들어낸 그 삼각형의 공간에 한 다리를 넣고서 딸깍딸깍 페달을 밟는 것이었는데, 매우 불편하고 괴이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 안장에 올라앉아서도 아슬아슬하게 발끝이 페달에 닿을 만한 나이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싶은 욕구는 못 말릴 지경이 된다. 어른들이 받쳐놓은 자전거에 올라앉아 헛바퀴를 돌리는 것 정도로는 양이 차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나 삼촌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혼날 작심을 하고 몰래 끌고 나와서 한 번씩 모험을 해본다지만, 60년대만 해도 자전거 역시 무시 못 할 (움직이는?) 부동산이었으므로, 얼마쯤 여유가 있어야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할 것인가? 남의 집 마당 기둥 옆에 세워놓은 자전거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괜찮을까?”

“그래, 잠깐인데 뭐 어때.”

의기투합한 두 녀석이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누가 먼저 타느냐로 잠시 실랑이를 하던 녀석들은 그야말로 꿀맛 같은 하이킹을 즐긴다. 그러나 한 번씩 타고나서 살짝 갖다놓자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중에 망가지기라도 하는 날엔 동네가 한바탕 시끄러웠다. 그 시절 신작로는 울퉁불퉁, 사정이 안 좋은 데다, 버스라도 지날라치면 지레 겁을 먹고 길섶으로 비켰다가 아예 도랑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자전거가 수행하는 화물운송의 기능이었다. 내가 중학을 다녔던 마을의 삼거리 도갓집 앞에는 언제나 짐(바리) 자전거 여러 대가 주차돼 있거나, 혹은 술통을 배달하느라 부단히 드나들고 있었다. 한 말(斗)들이 플라스틱 탁주 통을 뒤쪽의 짐받이에 너덧 개씩이나 포개 싣는가 하면, 양옆에도 한 통씩을 더하여 달고서 신작로며 둑길을 거침없이 내달렸는데 그 모습이 가히 경이로웠다. 물론 아주 드물게는 자전거가 균형을 잃고 자빠져서 아까운 술을 길바닥이 마셔버리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목적지에 다다르면 운전수가 재빨리 내려서 균형을 유지시켜 받침대를 내려 세우는 모습 또한 놀랄 만했다.

짐자전거는 아예 작은 용달차였다. 막걸리뿐 아니라 시멘트를 나르기도 했고, 밭에서 거둔 곡식을 꾸려 싣고 농롯길을 내달리기도 했다. 재주 좋은 어떤 이는, 읍내 철물점에서 구입한 아주 기다란 파이프를 왼쪽 어깨에 얹고서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리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전거로 실어 날랐던 게 어찌 물건뿐이었겠는가. 어느 날 읍내에 나갔다가, 입술연지를 진하게 바른 여인이 보자기로 싼 무엇인가를 한 손에 들고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다른 팔로 사내의 허리를 껴안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놀라는 표정을 하자 읍내 사는 영관이가 말했다.

“아, 저 여자? 초원다방 레지여. 커피 배달 가는 것이랑께. 그라고 저 남자는 읍내 장터를 주름잡는 날라리고.”

그 날 영관이로부터 ‘레지’와 ‘날라리’라는, 왠지 매우 근사해 보이고 혀에 착착 감기는 말을 둘씩이나 처음 듣고 배웠다.

15년 전, 자전거포에 얽힌 얘기를 취재하러 충청도 서천읍에 있는 한 자전거 대리점에 들렀을 때, 해방 전인 1940년대 초에 군청 서기를 했다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그때는 자전거가 귀해서, 지나가던 처녀들한테 뒷자리에 타라고 하면 주춤주춤 하다가도, 열이면 일곱은 올라탔다니께. 시방 우리 집 할멈? 그때 내 자전거 뒷자리에 탔던 처녀여.”

둘이서 끝말잇기 놀이라도 하였을까? 길을 지나다가 자전거로 잠깐 ‘동반(同伴)’하였던 그 처녀 총각은 아예, 아주 긴 삶의 연륜마저 함께 굴리는 평생의 ‘반려(伴侶)’가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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