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이른 가을 여행

  • 입력 2016.09.23 15:13
  • 수정 2016.09.23 15:22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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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 (경북 의성군 봉양면)

이른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의성군 여성농민들이 제일 시간 내기 좋은 날을 진작 잡아 두었다. 오늘은 여느 행사나 대회 때처럼 어른들을 모셔야 한다는 부담감 없는 우리 자신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다. 저 먼 서해로 가기 위해 이른 시간 모였다. 변산반도인 부안으로 장장 4시간을 달려야 한다. 가는 차 속에서 한명 한명씩 나와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발랄 명랑한 애자형님은 분위기메이커다. 전교조 활동을 하던 남편 따라 의성에 와 이젠 아이들도 다 키웠다. 이혼한 오빠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던 친정엄마의 고충을 보다 못해 조카 둘을 여기 의성에 데려와 도맡아 키우고 있다. 남편도 명예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농사와 농민회 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배금선 형님은 어쩌다가 보니 여행 날짜가 한여농의 일박이일 리더십 교육과 겹쳤지만 교육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여기로 왔다고 말씀하신다. 농사지으시는 거나 자식들 건사하시는 거나 여농 활동 모든 면에서 우리들에게 모범이시다.

그리고 갓 여농에 들어온 36살의 혜정이는 아이 셋이 줄줄이 자라고 있고 혈기왕성한 남편은 자꾸 농기계를 탐내서 없는 농기계가 없다. 급기야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화장품 외판까지 한다. 그런 혜정이에게 나는 내가 보내왔던 시절을 이야기 해 준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 하려니 어찌 지내왔나 싶다. 농민회 활동에 늘 집을 비운 남편을 대신해 어린 아들 유모차에 태워 들로 나와 타작한 논에 짚단을 일일이 손으로 묶었던 일, 그 짚단으로 그늘을 만들어 놓고 아이를 재웠던 일. 오로지 딴 생각 없이 농사만이 우리가족을 지켜낼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지내왔던 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나이 때에 왜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을 안 했던가 하는 후회도 조금은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순배 돌아가니 벌써 부안이다. 4시간이 언제 흘렀나 싶다. 맛난 백합 구이며 회로 점심을 먹고 채석강도 한 바퀴 돌고 엄마 따라온 사진사가 있어 추억을 마음껏 남긴다.

다음으로 간 곳은 변산 공동체 학교다. 학교 교장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꼭 무슨 영화의 세트장처럼 집이며 강당이 꾸며져 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동체 생활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는 물론 비닐을 전혀 쓰지 않는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자기농사, 자기가족에 아등바등하는 우리들에게 이들의 삶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20대 중반에 들어와 40대 후반인 지금까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교장선생님의 얼굴에서는 평온함이 묻어 나왔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부안을 떠났다. 늘 비 오던 날씨는 너무나 청명했고, 아직은 일러 단풍 구경은 못 했지만 한적함이 더 좋았다. 오는 차 속에서 서로에게 술도 한잔씩 권하면서 애자 형님의 사회로 노래도 한 곡씩 한다. 유일하게 부를 수 있다는 도희형님의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와 내가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트로트 ‘서울 평양 반나절’이란 노래가 국방부의 지시(?)로 틀 수 없다고 화면에 나온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싶다. 노래도 맘 놓고 부를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럼 생음악으로 하지 뭐~” 하면서 목청을 돋우었다.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식의 큰 공동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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