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부채의 족쇄를 끊자!
농가부채의 족쇄를 끊자!
  • 최용탁 소설가
  • 승인 2016.09.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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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탁 소설가]

새천년이 시작되고 농민들의 핵심적인 투쟁 목표는 농가부채의 해결에 집중되었다. 농가부채는 길고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멀게는 봉건 왕조시대를 뒤흔든 환곡의 난이 곧 농민들이 짊어진 부채였으며 그로 인해 땅을 잃고 유민이 되거나 민란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서도 농민들은 소위 장리 빚이라는 부채에 시달렸고 이는 다시 농협이나 금융기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게다가 수입자유화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락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체 농가부채는 2000년 무렵에는 38조원에 이르러 농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이는 10년 전보다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부채는 곧 죽음이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들이 속출했다. 김대중정부는 농가부채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근본적인 처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농민들 스스로 싸워서 해결할 문제였고 전국에서 그 죽음의 사슬을 끊으려는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시위에 나선 농민들.

농가부채 해결, 투쟁을 선언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21개 농민단체는 <농가부채특별법 제정을 위한 농민단체협의회>를 결성하고 투쟁에 나섰다.

농가부채의 책임은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 온 역대 정권의 농정실패에 있었다. 대표적인 농정실패 사례가 문민정부의 역점사업이었던 42조원 규모의 농어촌 구조개선 투·융자사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UR협상 이후 농산물 시장개방 등으로 농어촌의 구조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엄청난 규모의 투·융자사업을 시작했지만 지원 실적에만 급급,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설상가상으로 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로 인한 농자재 값 폭등과 소비감소 등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경영수지가 악화돼 농민들은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물론 국민의 정부 들어 농가부채의 심각성을 인식, 98년 상반기부터 정책자금에 대한 상환연기를 주요 내용으로 한 부채경감대책을 5차례나 내놨지만 단순 미봉책에 불과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농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농민단체들은 현재의 농가부채는 농정 실패가 불러온 것이므로 특별법을 제정해 농촌을 회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재원확보가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로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반농민적 인식에서 나온 것일 뿐이었다. 재벌과 은행을 살리기 위해서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무려 150조원이나 투입하면서 농업과 농민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에는 인색하였다.

그 해 11월 농민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싸움에 나서는데, 이 선언문은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농민들의 고통과 분노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땅과 이 민족을 지켜 온 우리 농민들은 수입개방과 농축산물 가격폭락, 악성부채 누적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게다가 내년으로 다가온 쇠고기 시장의 완전개방에 따른 한우 사육기반의 붕괴 우려와 돼지 값 폭락에서 보듯이 농업은 지으면 지을수록 빚이요 일하면 일할수록 손해라는 말이 꼭 들어맞고 있다.

국민의 정부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우리 농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은 사회적 무관심과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추진, 40만 마늘농가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굴욕적인 한ㆍ중 마늘협상 등 아득한 절망과 배신뿐이다.

최근에도 농가부채와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농민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으나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농촌이 사회의 사각지대가 되어 불쌍한 농민의 자살행렬이 계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우리 농민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우리 450만 농민은 농업ㆍ농촌의 파탄과 농민생존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필사즉생의 비장한 각오로 11월 21일의 총궐기 투쟁에 나설 것이다. 전국 각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압박하여 받은 ‘농촌회생을 위한 서약서’는 40여장을 넘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농민 투쟁의 불길이 전국을 뒤덮자 정부에서는 뒷북치기로 상호금융 금리 인하와 정책자금 분할상환 등 확정되지도 않은 대책을 언론에 흘리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농민은 더 이상 얄팍한 수에 속지 않는다. 희생을 강요당해도 울분만 삼키는 농민은 더 이상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 형제, 자매를 죽음으로 내모는 농정을 끝장내고 농업과 농촌을 지키기 위해 온 몸으로 투쟁할 것이다.

농가부채특별법 제정을 위한 농민단체협의회는 강철같은 연대로 우리 농업ㆍ농촌의 회생과 농민생존권 보장을 위해 오직 투쟁의 한 길을 갈 것임을 당당히 선언한다.’

경남 사천지역 농민들이 나락 적재투쟁을 벌이고 있다.

100만 농민 총궐기대회

2000년 들어 전국 곳곳에서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농민들의 구체적인 요구는 정부 정책 자금에 대해 원리금은 5년간 상환을 유예한 뒤 10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연리 3%)하고, 농협 등에서 빌린 돈은 5년 거치 10년 상환(연리 5%)이었다. 농민들을 연쇄 파산으로 몰고 가는 주범인 연대보증에 대해서는 죽거나 도망갔을 경우 탕감해 달라는 것이었다.

충남 청양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투쟁 사례를 보자.

농민들은 농축산물의 가격폭락으로 부채를 갚을 수 없다며 군청을 비롯해 농협, 축협 등에 농기계와 벼가마 등을 반납하며 시위를 벌였다. 농가부채대책위원회에서는 트랙터와 이앙기를 앞세우고 청양군청 앞에서 농가부채 해결과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였다. 오후 5시부터 시위에 들어간 농민들은 6시경 군청 현관에 수십 포대의 벼 가마를 쌓아놓고 군수면담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으며 밤 10시까지 항의를 계속했다.

또한 농협중앙회 청양군지부를 트랙터 2대로 막아놓았고 청양축협 출입구에 트랙터 7대와 젖소 1마리를 메어놓고 농가부채 현물상환을 주장했다. 그리고 각 면에서도 산발적인 항의가 이어져 목면 지역농민들은 면사무소에 트랙터와 농기계 7대를 동원 항의하는 것을 비롯, 청양농협과 화성농협에서도 농기계 반납과 항의가 계속됐다. 특히 청양양돈협회 회원들은 돼지가격의 폭락에 대한 대책을 호소하며 군청현관 앞에 돼지 20두를 실은 차량을 세워놓고 군수를 면담, 양돈농가 보호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해 전농 지도부는 11월 21일에 ‘농가부채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 농민 총궐기대회’를 전국 동시다발로 벌이기로 결정한다. 이른바 상경투쟁의 성격을 띤 전국 고속도로 점거 시위를 계획한 것이었다.

전국 동시다발 고속도로 점거 투쟁은 전술적으로 가장 극한 투쟁이었다. 전국 농민들은 이날 전국에서 38조원에 이르는 농가 부채 상환유예와 이자감면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조치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그 해에도 역시 농축산물 가격폭락이 이어져 배추가 한 포기에 100원, 돼지고기 한 근에 500원이 고작이었다. 분노한 농민들은 ‘농촌회생 촉구’라는 혈서를 쓰기도 했다.

농민들은 이날 집회를 전후해 경부, 중부, 호남, 중앙, 김해, 구마 등 전국에 걸쳐 고속도로와 국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여 시위구간에서는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요즘 화물연대노조의 대표 구호인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는 그 원래의 소유권이 농민운동권에 있는 셈이다. 또 시위를 저지하는 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충북 옥천과 보은, 영동의 농민 200여명은 옥천 톨게이트 부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영동 농민 100여명은 차량 100여대를 세워놓고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각각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다. 진천, 음성의 농민 100여명도 진천IC 부근 중부고속도로 하행선 2곳에 진입, 한때 차량통행을 막았다. 논산 농민 150여명은 화물트럭으로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을 한 시간 동안 막았다.

경남의 거창, 함양, 산청, 하동지역의 농민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400여대의 차량을 몰고 88고속도로 상, 하행선을 점거하여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고속도로 통행이 통제됐다. 함안 농민들도 남해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차량들로 막아 오전 한때 교통을 마비시켰다. 경북 상주 농민 300여명은 이날 오전 한때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부근 상, 하행선을 점거했다.

또 전남 나주지역 농민 500여명은 트랙터 30여대 등을 앞세우고 나주시청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고, 전북 군산 농민 800여명은 경운기 등 농기계 80여대를 동원, 시내도로 7km를 점거한 채 행진을 벌였다. 전북 남원지역 농민 800여 명도 전주~남원 간 국도에서 차량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농민 10여명이 부상했다.

이 날 전국에서 10만 명의 농민이 차량 1만 대를 동원하여 총궐기에 참여하였고 네 명이 구속됐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가장 가열찬 투쟁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구속되거나 연행된 농민들의 숫자도 많았다. 구속이 21명에 불구속 기소가 127명이었다.

농민대표들의 단식과 총궐기대회, 고속도로 점거투쟁, 한나라당사 농성 등으로 이어진 2000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발목 잡힌 정부를 상대로 고단하고 처절한 투쟁을 예고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거기에 더해 6.15공동선언에 의한 남북경제협력에 농민들도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민족농업, 통일농업에 대한 논의가 깊어진 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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