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렇게까지, 정말, 해야 했나?

  • 입력 2016.09.11 11:09
  • 수정 2016.11.24 17:37
  • 기자명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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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경우(境遇)’라는 말이 있다. 사리나 도리를 뜻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경북 성주에서 농사만 짓던 어르신들이 사드반대촛불집회에 나오면서 하시던 말씀이 “이건 (정부가) 너무 경우에 맞지 않지 않느냐?”였다.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시비를 가리려 드는 것이 사람이다.

또 경우 없는 일은 패악에 가까울 때도 있다. 한 농민이 간신히 자신의 목숨을 부여안고 300일이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직후부터 백남기 농민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아무런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촉구해도, 해도, 어떤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정부는, 경찰은, 검찰은 마치 귀가 없는 것처럼 들은 체도 안했다. 똑같은 말을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 반복해야 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깡그리 무너진 자리에서 가족들과 대책위, 농민들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 그래도 꿈쩍이지 않아 국회청문회까지 오게 됐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20초간의 무자비한 직사 살수’ 속에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대해온 경찰의 허술한 지휘체계가 적나라하게 들어있다. 12일 청문회를 며칠 앞두고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살수차를 조작하면서 당시 직사 살수 경찰은 물대포를 쏴 본 경험이 단 한번 뿐이었고 전문자격증도 없었다. 게다가 발로 쐈다는 자료들도 속속 발표됐다. 이런 허술한 체계 속에서 20초 직사 살수가 자행된 것이다. 단 몇 초라도 쏘지 않았다면 백 농민은 생명까지 위태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찰 상부에서 그만 쏘라고 명령이라도 내렸다면. 이에 청문회에서 경찰 내부의 지휘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는 백남기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북지방경찰청 315의무경찰대는 ‘김천 성주 사드 배치 관련 특화 전문화 집회시위 진압 훈련’을 실시했다. 백남기 농민의 국회청문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진압할 수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는 듯하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래서 가장 위중한 문제다. 12일 개최되는 백남기 농민 국회청문회에 국민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그 20초간의 직사 살수현장을 시청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까지, 정말, 해야 했나? 라는 장탄식들이 국가폭력 책임자를 처벌하는 국민 여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너무 늦었지만, 그 무자비한 살인 물줄기 앞에서 한 농민을 구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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