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참깨범벅 된 빨래터

  • 입력 2016.09.10 22:44
  • 수정 2016.09.10 22:46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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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오메 참깨가 오지네요.”

화엄사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랑 곁에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앉아 참깨 닥달을 하신다. 빨래터가 오늘은 참깨범벅이 되었다. 폭염이 참깨한테는 보약이라 하신다. 그 덕에 참깨가 통통하게 살쪄 기름 짜면 오지겄다며 다들 웃음꽃 활짝이다. 고소한 참기름에 간장만 넣어 밥 비벼먹는 날이 최고여 하신다. 살짝 영감님께 참기름 병을 건네며

“쳐드씨요”하면 “아니 뭔 말을 그리 해싼가?”/ “참기름 쳐 드시라구요”

거기에 고추장이 있다면 “퍼드씨요”라는 말이 추가되기까지 하니 하늘같은 서방에 늘 기죽어 살던 할머니들이 말 하나로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만으로도 꼬신지 “오메 진작에 나한테도 갈켜주시제”/“긍게 말이여 처드씨요, 퍼드씨요 징허게 오지네 그려” 빨래터에선 하하호호 웃음 떠나지 않는다.

아마 다음 장날엔 참기름으로 깨소금으로 변신하여 추석 상 곳곳에 고소함을 더할 것이며 자식들 봇짐 한가운데 떡 허니 자리 잡을 것이다. 중국산 참깨 덕에 돈으로 바꿀 만큼의 참깨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식구들 나눠 먹을 만큼만…. 씨앗을 넣고 솎아내고 풀을 뽑아내고 쓰러지지 않게 지주대를 설치하고 익은 순서대로 하나씩 수확해야해 손이 많이 가는 밭농사 중 하나다. 태풍이라도 오게 되면 땅에 배를 깔고 아예 싹까지 튀어버리는 참깨농사가 징글징글하다면서도 소박한 밥상에 한방울만으로도 귀한 밥상 만들어내는 참깨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으리라. 자식들 밥상에 꼬순내 보태는 마음으로, 물 묻은 바가지 참깨 달라붙듯이 복이 넘치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섬진강 퇴적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 시절부터 참깨에 최적화된 땅, 우리 마을은 참깨 주산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참깨가격 만큼은 정해진 것처럼 여전하기만 하다. 혹여 가격이 오른 해는 수확량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해임에 틀림없다. “내년에도 내가 참깨를 심을 수 있을는지…” 다들 말꼬리를 흐리신다. 어디 참깨뿐이랴. 고추도 쌀도. 빨래터는 어느새 한숨 소리 가득해진다. “모름지기 한 집안도 나름 계획이 있고 하는디 이놈의 나라가 우리 농사꾼들 생각은 하고 있긴 할끄나”/“긍게 말이여. 꼬치 심으라면 꼬치 심고 무시 심으라면 무시심고 했는디 심고 나면 나 몰라라”/“에고 쌀을 어찌케 해야 한다냐. 어쩌다가 이리 되부럿다냐. 애들 쌀한톨 더 들어간 밥 멕일라고 얼메나 바둥바둥했는디 쌀로 사료를 만든다드만”/“우리쌀도 많은디 왜 수입허고 지랄이여” 성토장으로 변해버린 빨래터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한숨이 아닌 함성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자식새끼들에게 자랑스럽게 대물림 할 수 있는 농민이 되겠노라고 함께 다짐한다. 참깨 닥달하던 빨래터가 진원지가 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시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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