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내 카톡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 입력 2016.09.04 21:07
  • 수정 2016.09.05 08:57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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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어느 날 자고 나니 가을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계절이 하룻밤 사이에 바뀌어 버리는가? 어떤 이는 이젠 올여름이 너무 더워서 춥다는 소리는 절대로 안 한다고 맘먹었다 한다. 가을이 오긴 온 모양이다. 하늘이 높아졌고, 불어오는 바람에 싱숭생숭 하다. 자동차 오디오1번에 들어있는 김광석CD를 들으면서 가을 기분에 빠져 보기도 한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추석 전까지는 안달하지 않으면서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가을에 빠져 볼 수도 있으니. 정작 가을이 무르익는 10월은 엉덩이는 딱 붙인 채 손에는 마늘 냄새 나도록 마늘씨 장만에 물들어 가는 산을 눈으로만 둘러 볼 뿐이다.

그렇게 시끄럽던 카톡도 소리를 죽이지도 않았는데 조용하다. 동창들, 친구들끼리의 카톡방의 수다가 나는 항상 부담이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잡고 자판을 칠 여유가 없으니 일하면서 한 번씩 눈팅만 한다. 그러니 당연히 자판을 치는 손도 느리다. 오타는 자꾸 나고.....쉴 새 없이 뜨는 카톡방을 보면 어쩜 저렇게 자판으로 수다를 떠나 싶다. 입으로도 수다를 잘 못 떠는 나는 손으로는 더 젬병이다. 초대해도 별 반응이 없는 나를 친구들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카톡방이 조용하다. 이젠 나를 빼고 자기들끼리만 카톡을 하나 싶어진다.

나도 여유가 생겼단 말이기도 하다. 동네 젤 마지막 집인 우리 집은 산과 붙어있다. 적적함을 느껴 마늘을 만지던 하우스에서 나와 길바닥에 주저앉아 오늘은 맘 내서 친구들과 통화를 해 보자며 전화기를 연다. 큰 병을 앓았던 친구는 이제 많이 나아서 오늘은 아파트 근처 조그만 공터를 일구어 밭을 만들어 채소 씨앗을 뿌리고 왔단다. “정미야 나는 손바닥만 한 밭 만들고도 어깨가 빠지는 것 같은데, 닌 정말 대단타야. 그 많은 농사를 어떻게 다 지어?” 한다.

여름옷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친구는 자기 딸이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우리 집 막내에게 물려줄 옷이랑 신발이 있다며 카톡으로 주소를 남기라 한다. 그래도 몇몇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나마 낫다. 산다는 것이 친구들과의 허물없는 안부도 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런 카톡방의 수다도 부담으로 느끼고 살았으니, 참 나도 재미없는 인생이다 싶다. 처한 상황들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친구는 그 나름의 애로 상황이 있지만 카톡에 잘도 응대 한다. 대형 마트 고객센터에 있는 친구는 까칠한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일일이 친구들의 글에 댓글을 달아준다. 모두들 나 못지않게 바쁘게 살 것이다. 단지 그네들은 자기 일을 하면서도 핸드폰을 지척에 두고 그 여유를 즐기는 것이고, 반대로 나는 먼지 묻은 장갑 빼고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핸드폰 꺼내 응답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가을 배추 모종을 심는다. 봄부터 여름내 채소 하나 제대로 길러 먹지 못한 것이 양심에 찔려 온갖가지 채소 씨앗을 뿌린다. 무, 시금치, 당파, 상추, 총각무…. 여름내 가물었던 밭은 돌덩이처럼 딱딱하다. 그러나 그 밭은 이 여린 모종과 씨앗들을 나와 함께 길러낼 것이다.

바람이 부는 가을날 문 닫아 놓고 먹는다는 상추를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한 소쿠리 정갈히 씻어 놓고 기다리고 싶다. 그래서 그 친구랑 얼굴 마주 보면서 맛난 밥상을 함께 먹고 싶다. 그리고 허물없이 수다도 떨고 싶다. 가을은 이래서 좋은 모양이다. 좀 내려놓을 수 있고, 뒤돌아 볼 수 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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