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초가집 짓기 ⑤] 흙일

  • 입력 2016.09.04 21:05
  • 수정 2016.09.05 16:5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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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마을 사람들이 초가집 짓는 일에 일손을 보태는 마지막 날이다. 이 날은 울력 나온 사람들의 행색이 여느 날과 다르다. 제가끔 무엇인가를 들고 지고 메고 온다.

“나는 마람 한 단 갖고 왔구먼.”

“나는 장작 한 짐.”

“나는 샌나꾸 한 타래 꽈갖고 왔네.”

사람들이 부조 삼아, 혹은 이바지 삼아 마당에 내려놓은 마람(이엉)이며 장작이며 새끼줄 따위가 이 날 집짓는 데에 소용되는 중한 재료들이다. 이 날 할 일은 토역(土役), 곧 흙일이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간 사람들이 서까래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다음에, 흙이 빠지지 않도록 장작개비를 촘촘히 깔아놓고 엮는다. 그것을 ‘서슬을 깐다’고 하였다. 지붕에 서슬 까는 작업을 하는 사이에 아래쪽 마당에서는 흙 이기기를 하느라 부산하다, 남정네들이 바지게로 황토 흙을 져다 부리면, 어멈네들은 동이로 물을 길어다 붓는다. 작두로 볏짚을 듬성듬성 썰어서 넣고는, 너도 나도 맨발로 들어가 흙을 밟아 이긴다.

흙이 고르게 이겨졌으면 메주 만들기를 한다. 그 일은 어멈네 차지다. 흙 반죽을 메주덩이 만 하게 만들어 놓으면 남자들이 그 흙덩이를 위로 던져 올리고, 지붕에 올라가 있는 토수(土手)가 받아서 흙을 발라나간다. 흙일을 하는 날이면 누구 할 것 없이 얼굴이 흙 범벅이 되었다. 나도 흙 이기는 일을 해보겠다고 고무신을 벗고 들어갔다가, 반죽에 묻힌 발이 빠지지 않는 바람에 철퍼덕 흙 반죽을 깔고 앉아버렸다. 삼촌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지붕에 흙을 다 바르고 나면 짚을 잇는 작업이 이어진다. 미리 엮어서 마당에 세워놓았던 마람 뭉치를 들어서 사다리의 중간쯤에 서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면, 그 사람이 다시 지붕으로 올려준다. 그걸 받아서 지붕 잇는 기술자가 펼쳐서 차근차근 지붕을 덮어 나간다. 맨 아래 처마부분은 이엉의 밑동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두르고 그 다음부터는 거꾸로 둘러서 덮어나간다.

마지막으로 용마루가 지붕으로 올라간다. 지붕의 맨 꼭대기에 기다랗게 가로로 덮어 얹는 것이 용마루다. 긴 대나무를 뼈대 삼아서 거기다 볏짚을 감아 엮는 것인데, 야무지게 잘 엮어야 비가 새지 않는다.

이제는 지붕을 ‘누를’ 차례다. 지붕에 올려서 차곡차곡 둘러 입힌 볏짚 이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끼줄을 가로세로로 걸쳐서 눌러 매는 것을 일컫는다.

지붕이 제 모습을 갖추고 나면 언듯 보기엔 완성된 초가집 한 채가 모양을 갖춘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다. 벽도 만들어야 하고 방구들도 놓아야 한다. 허공에 흙을 바를 수 없으므로 벽체의 뼈대를 만들어야 한다. 어른 엄지 굵기의 나무토막을 일정한 간격에 맞춰 세로로 세우고, 쪼갠 댓가지를 가로로 대어서 칡 넝쿨로 감아 매는데, 나무를 세우는 것을 ‘힘살을 세운다’라고 하고 댓가지를 엮어나가는 작업을 ‘외를 엮는다’고 얘기한다. 힘살을 세우고 외를 엮었으면 이제 흙을 발라야 한다. 한쪽에 흙을 바른 것을 ‘초사’라 하고 맞은편 쪽으로 가서 바르는 것을 ‘합벽’이라 한다.

콘크리트 작업을 할 때에도 맨 나중에 마감하는 미장 과정이 있듯이 벽 바르는 일도 그러하다. 대개는 백회가루를 물에 엷게 타서 문질러 발랐지만 백회가 보급되지 않던 시절엔 시냇가에 가서 곱고 하얀 흙을 파다가 체로 걸러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구들을 놓는 작업이 남았다. 방구들만 전문적으로 놓는 기술자가 따로 있기도 했으나 그냥 경험 있는 동네 사람들이 맡아 하기도 했다. 물론 구들에 쓰일 방돌은 집주인이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미리 주워다 놓은 것들이다. 방돌이 두꺼우냐 얇으냐에 따라서, 그리고 구들 통로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서 식구들의 겨울철 잠자리가 달라진다. 아랫목은 설설 끓는데 윗목은 냉골인 경우도 있고, 부엌 연기가 굴뚝으로 나가지 않고 아궁이 바깥으로 새어나와서 엄니들을 고생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 초가삼간, 그렇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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