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으로 돌아간 쌀값 … 이것은 재앙이다!

지역농협RPC 재고 33만8,000톤 … 정부 재고 역대 최고치 175만톤

  • 입력 2016.09.02 10:40
  • 수정 2016.09.02 11:05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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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신문 박경철·배정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본지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쌀 재고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좌담회’를 통해 지역의 상황을 진단하고 재고 쌀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하룻밤 사이에 가을이 됐고 그 밤사이에 벼 수확기도 성큼 다가왔다. 지독했던 폭염과 가뭄 속에서도 쌀농사는 3년 연속 풍년을 맞았다. 올해는 유독 대풍이라지만 누구하나 반기는 이가 없다. 재고 쌀은 넘쳐나는데 신곡까지 쏟아질 예정이니 재고를 처리해야하는 지역농협RPC에서도,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쌀값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농민들도 답답한 마음 감출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전남지역의 재고 쌀은 9만톤에 육박하고 있다. 9월이면 재고가 없어서 둔갑 쌀로 골치를 썩던 강원·경기지역도 구곡 처리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정부의 쌀 재고량은 190만톤으로 사상최대치를 달성했다.

이에 본지는 지난주 커버스토리 ‘2016 쌀값폭락 잔혹사’에 이어 ‘쌀 재고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좌담회’를 갖고 재고 쌀의 해법을 논의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l 좌담 l

이효신 (사)전국쌀생산자협회장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장

주 철 농협중앙회 양곡부장

이상만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

l 사회 l

심증식 한국농정신문 편집국장

 

문병완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 회장 “농민들이 쌀값 문제에 대해 포기해버리면 그 책임은 전부 RPC가 지게 된다”

넘치는 구곡, 넘쳐날 신곡

심증식: 쌀 재고 문제부터 시작해 벼 수확기가 다가오면서 수급문제가 코앞에 닥쳐있다. 현재 농촌의 분위기와 농협, 정부의 재고상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이효신: 사실 재고 쌀은 농협이나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농민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다만, 재고를 해결하지 못해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보통 2년 풍년이 들고나면 흉년이나 재해로 인한 피해가 생기곤 했는데 올해는 3년째 풍년이다. 재고문제까지 겹쳐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대부분 하고 있다. 정부와 농협에는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농가 개인이 ‘추석 전에 수확해서 팔면 낫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게 전부다.

문병완: 전국에서 재고가 가장 많이 쌓인 곳은 전남이다. 강원도에선 조생종벼(조벼)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었는데 강원도에도 2015년산 쌀이 1만톤 넘게 쌓여있어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철: 7월 말을 기준으로 전남의 재고는 8만8,000톤으로 제일 심각하다. 강원도도 재고가 1만4,000톤이나 쌓였다. 주목해야할 것은 강원과 경기지역이다. 워낙 쌀이 잘 팔리는 지역들이라 9월이면 재고가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고는 있지만 이들은 보통 7월 말, 늦어도 8월이 되면 재고를 찾아볼 수 없던 지역이다. 다른 지역 쌀이 경기미로 둔갑해 팔린다는 얘기도 종종 들리곤 했는데 이 지역들마저 9월까지 재고가 쌓여있는 시대가 왔다. 농협 재고는 33만8,000톤이다. 지난해 7월 말과 비교하면 6만5,000톤이 더 많다. 재고 때문에 죽겠다.

이상만: 지난해에는 쌀 재고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5년 12월 말 기준 190만톤이었다. 수요도 줄고 2년 연속 풍년으로 공급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별재고관리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재고는 175만톤이다. 2018년 말까지 재고를 80만톤으로 줄이기로 계획했는데 신규 수요 창출 외에는 해답이 없다.

 

쌀값 하락에 RPC 경영도 악화일로

주 철 농협중앙회 양곡부장 “지역농협RPC의 최근 3년간누적적자는 1,000억원이 넘는다”

심증식: 쌀값이 투매하다시피 내려가고 있다. 수확기 쌀값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쌀값 하락은 농협RPC 경영 악화로 이어져 더욱 심각하다.

이효신: 어느 정도 가격이 지지되던 조벼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조벼는 아무리 가격이 좋지 않다 해도 지난해 전라도에서 5만5,000원 정도는 유지했다. 근데 올해는 조벼부터 가격폭락이 심상치 않다. 햅쌀이 추석선물로 나가고 대형마트에서 소비가 활발한 편임에도 4만2,000원이다. 수확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가격도 계속 떨어져 4만원도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1년 (80kg 기준) 통일벼는 9만5,700원, 일반벼는 11만3,700원이었다. 지금 쌀값은 80kg으로 환산해보면 11만5,500원이다. 쌀값이 25년 전인 1991년으로 돌아갔다. 재앙 수준이다.

문병완: 40kg 조곡(벼) 가격은 4만원마저 무너졌다. 20kg 쌀 한가마니로 환산하면 3만5,000원에도 못 미친다. 산지 쌀값이 이대로 계속 가면 안 된다. 농민들이 이런 상황에 만족해서 여론을 형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아무리 얘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포기하는 상태다. 농민들이 소득보전만 받고 쌀값 문제에 대해 포기해버리면 그 책임은 전부 농협RPC가 지게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농협 RPC도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민간RPC 폐업은 뻔한 일이다. 당장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지만 RPC가 폐업하면 2~3년 후 농민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수매기능이 중단되는데 어디에 수매를 하고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

주철: 경기·강원지역 농협RPC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해 72억원이었던 적자폭이 올해는 110억원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지역도 지난해 40억원대에서 50억원대로 적자경영이 심화될 것 같다. 지난해 전국 농협RPC 가운데 흑자가 난 곳은 60곳인 반면 적자가 난 곳은 93곳이다. 전국의 농협RPC 적자 수준은 2014년 305억원, 2015년 340억원, 올해는 270억원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충남에서 적자를 많이 해소했기 때문에 추정치를 낮게 잡았지만 수확기 쌀값이 우리 예상보다 더 낮아지면 적자는 예상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농협RPC의 최근 3년간 누적적자가 1,000억원을 넘는다.

 

‘협동’을 잊은 농협

이효신 (사)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 “변동직불금의 실패를 인정하고 가격지지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심증식: 결국은 농협 제 살 깎아먹기 아닌가. 저쪽 농협보다 더 싸게 팔아서 우리 것부터 정리하자는 식인데, 소매 쌀값도 문제지만 RPC의 원료곡 투매도 문제다.

이효신: 농협의 투매 문제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혈경쟁은 영향을 크게 주느냐 안주냐의 차이지 우리나라 양곡시스템의 고질적 문제다. 양곡업무는 2005년까지 정부가 관리했고 2006년부터 농협이 아무 준비 없는 상태에서 이어받았다. 지난해 전체 농협의 조곡 수매량은 40%다. 40% 수매하고 정곡은 얼마정도 팔았는지 물으니 알려주지 않는다. 협동조합 간 협동이 아니라 협동조합 간 경쟁을 지속해온 농협이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지난해 전북지역에서도 같은 브랜드 쌀을 이 농협에서는 4만원 저 농협에서는 3만8,000원, 또 어디서는 3만6,000원 이런 식으로 가격 경쟁을 했다. 1년 동안 나락을 사서 어떻게 팔고 도정하고 할 계획이 없이 농협은 적자만 보고 있고 이득은 민간 RPC나 도매업자가 취하고 있다. 농민들이 쌀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생산비가 이 정도니 가격은 이 정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은가.

주철: 농협RPC가 너무 많다보니 이런 문제점들이 생겨났다. 출혈경쟁을 하고 적자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농협RPC가 200개에서 153개로 줄었다. 중간 도매업자나 민간RPC 좋은 일 시킨다고 하는데, 농협이 많은 양을 사지 않나. 민간RPC는 겨우 정부자금 지원받는 정도만 수매하고 재고를 적정선에 맞추는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농협이 워낙 많이 사다보니까 수확기 다가오면 재고정리를 위해 그렇게라도 팔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걸 유통업자만 좋은 일이라고 하기엔….

 

수입쌀도 사료용으로

이효신: 쌀값 폭락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농민들은 수입쌀, 특히 밥쌀 수입이 문제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부와 농민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고 농협은 방관하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쌀 생산조절을 위해 논 2만ha를 줄이라는데 그걸로 줄일 수 있는 공급량은 10톤 이내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가 수입하는 양은 40만톤이 넘고, 그 중 밥쌀이 6만톤인 것을 감안하면 밥쌀용 쌀 수입을 안 하면 된다. 수입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흉년이 들지 않는 이상 수급문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상만: 우리나라의 쌀 수입량은 40만8,700톤이다. 이는 국내 소비량의 10%나 되는 양이어서 수입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대책이지만 국제적 협약이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다. 다만 그 중 밥쌀 수입량이라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4년까지는 쌀 수입 의무조항에 밥쌀용이 30%로 규정돼 있어 12만3,000톤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부터 수입 의무량이 사라지면서 30% 의무조항을 삭제하고 양허표를 제출했다. 그렇지만 국내산 쌀 80~90%를 밥쌀용으로 쓰고 있는 상태에서 수입산을 전부 가공용으로만 쓰게 되면 WTO 내국민대우 원칙 위반이 된다. 그래서 40만8,700톤 중에서 ‘일정량’은 밥쌀용으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핵심은 그 ‘일정량’이 얼만가 인데 전문기관을 통해 수요조사를 해 가능한 적은 양을 설정하려 한다. 올해는 밥쌀용 쌀을 2만5,000톤 입찰했고 들여오고 있는 중이다. 내년 수입량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많이 줄이도록 노력할 것이다.

심증식: 수입쌀은 해결 방법이 요원하다. 수입쌀을 밥쌀용 말고 사료용으로 더 쓴다거나 새로운 해법은 없나?

이상만: 수입산 쌀의 용도는 내국민대우조항에 따라 국내산 쌀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가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그 동안 국내산 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입산 쌀도 사료용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올해 상반기 2012년산 국내산 쌀 9만9,000톤을 사료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2012년에 수입된 쌀도 사료용으로 사용할 명분이 생겼다. 만약 가능하다면 2,000톤 가량 사용할 수 있다.
 

정책의 전환이 절실하다

심증식: 앞으로 쌀 정책, 어디로 가야할까.

이효신: 결국 쌀값 폭락의 모든 책임은 농민에게 돌아온다. 농협의 적자도 농민조합원들이 책임져야 한다. 모든 정책의 실패는 고스란히 농민 몫이다. 쌀의 품질은 향상되고 균일해졌을 뿐만 아니라 생산비도 낮출 만큼 낮췄다. 정책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재고가 100만톤으로 줄어든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변동직불금의 실패를 인정하고 가격지지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상만: 공공비축제를 하지 말고 소득지지 잘 안되니 가격지지로 다시 돌아가자는 의견이 있다. 가격지지에서 소득지지로 전환한 이유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AMS(농업보조금) 한도가 1조4,900억원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가격지지를 하면 쌀을 사들일 수 있는 양이 계속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2005년에 소득지지정책으로 바꾼 것이다. AMS 한도는 쌀 뿐만 아니라 모든 농산물을 다 포함한다. 때문에 가격지지 정책으로 돌아갈 경우 한도 내에서 다른 품목의 최저가격도 보장하고 쌀의 가격지지까지 하려면 수매량이 상당히 적어진다. 직불금 상한은 전문가들을 모아 포럼을 진행하면서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11월까지 포럼을 진행한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격리, 적기에 적량을

이상만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 “시장격리에 대해서는 수확기 작황을 봐가면서관계부처와 협의해야할 것이다”

문병완: 지역농협RPC들을 둘러보니 밀어내기가 발생하고 있다. 2015년산 쌀값이 20kg 기준으로 도매는 2만8,000원, 소매는 3만원이라고 한다. 제갈공명의 신의 한 수를 두지 않으면 큰일난다. 어차피 시장격리는 불가피해 보인다. 시장격리를 할 거라면 좀 더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

심증식: 3만원이면 수입쌀 소매가격보다 낮은 수준이다. 시장격리 밖에는 답이 없고, 정부도 결국 생산조정 등 쌀 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면 수확기에 맞춰 넘치는 공급량을 한꺼번에 시장격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상만: 시장격리에 대해서는 당장 답변을 할 수 없다. 다만 긍정적 역할과 부정적 역할에 대해 모두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시장격리를 하면 시중에 있는 물량을 정부가 사들이게 되니 공급량이 줄어서 가격을 지킬 수 있다. 따라서 변동직불금이 나가는 것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다만, 그만큼 정부의 재고가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넘치는 재고가 쌀값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의 재고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시장격리까지 겹치면 향후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여지도 있다. 현재 부담을 미래로 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시장격리에 대해서는 수확기 작황을 봐가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야할 것이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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