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성주 참외농사꾼, 사드투쟁 선봉에 서다

이 사람 ㅣ 이재동 성주군농민회장(성주사드배치 철회 투쟁위 운영위원)

  • 입력 2016.08.26 17:40
  • 수정 2019.05.01 16:12
  • 기자명 심증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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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사드 철회 평화 촉구’를 외치며 성주군민 908명이 삭발했던 지난 15일 저녁 성주군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이재동 회장이 수많은 군민들 앞에서 “사드 배치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입추도 지나고 처서도 하루 앞둔 22일 경북 성주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성주군에 들어서자마자 사드배치 반대 현수막이 제각각 시선을 잡아끈다. 사드 반대 투쟁 41일째, 김항곤 성주군수가 오전 10시 “제3부지를 수용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넷 포털에서 속보로 전국에 뿌려지고 있었다. 이어 200여명의 군민들이 모인 가운데 성주군수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엎치락뒤치락 급박한 성주, 이재동 회장 취재가 무산될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했다.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정오 사드반대 결집장소인 성주군청 마당. 이재동 성주군농민회장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하루하루가 아주 전쟁이다.”

목이 푹 잠긴 이 회장이 악수와 함께 건넨 첫인사. 그 한마디로 오전의 전쟁을 툭 털어냈다. 군청 대강당에서 기습적으로 열린 군수 기자회견을 온몸으로 막아서다 공무원들의 저지로 밀리고 치인 그였다. 일방적인 발표에 군수를 향해 목청껏 항의 하느라 다소 지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군청 마당 한 켠 천막 아래 자리를 잡고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괜찮으신지, 상황이 어떤지 물을 찰나 투쟁위 활동에 동참하는 여성분이 불쑥 이 회장을 찾아 군수실 앞을 상세히 묘사한다. 여러 명의 여자들이 점심식사도 거르고 군수실 앞을 지키고 있노라며 성주군수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회장은 점심도 안먹고 어쩌냐, 일하러 안가냐, 걱정했다. “대부분 학교 후배들입니다. 오늘 군수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출근도 미루고 저렇게 지키고 있네요.” 누구랄 것도 없이 내 살 곳을 지키겠다는 스스로의 결의가 식지 않고 있었다.

친환경으로 참외 농사를 짓는 이재동 회장이 이른 새벽 참외를 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오늘 군수의 기자회견은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국방부의 공작이란다. 이미 예견된 그림이었다. “며칠전부터 국방부 기조실장이 성주에 와서 공작을 벌이고 있었던 거죠. 투쟁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의견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제3부지를 받아들인다고 결정내린 적이 없습니다.” 하루 전날 제3부지 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는데 투쟁위원회 홍보단장인 노광희 군의원이 회의 직전에 일방적인 발표를 하면서 투쟁위 명의로 제3부지 수용 여론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그 분이 발표 전에 국방부 기조실장과 협의 하는 것을 목격한 군민들이 있고, 이야기하는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뒀습니다. 녹음한 것도 있구요. 국방부에서는 제3부지로 방향을 틀려고 오래 전부터 공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오늘 오전에 군수가 관변단체 대표 몇몇하고 공무원들 앞세워 기자회견을 한 겁니다. 군수 기자회견에는 20여명이 참석했는데, 11시 투쟁위원회 기자회견엔 군민 200여명이 참석해서 군수의 제3부지 안이 무효라고 선언 했습니다. 군민들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죠.”

투쟁위원회는 군수의 ‘기획된’ 돌발행동에 신속히 대처했다. 이런 속사정은 성주군민들만 안다. ‘기획된’ 기자회견에는 성주군민들이 미워라 하는 ‘보수언론’이 동행했기 때문이다.

성주군청엔 41일째 촛불이 켜졌다. 성주군 주도 7월 11일 촛불은 계산에 넣지 않고,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12일을 이곳에선 1회 촛불이라 부른다.

“처음엔 우리 지역에 사드배치를 한다는 것이 반대주제였다면, 촛불날짜가 거듭될수록 사드 본질의 문제점에 반기를 들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실망이 시시각각 번졌어요. 우리 성주가 참 살기 좋은 곳이거든요. 성주하면 참외잖아요. 성주가 농가소득이 전국 2위입니다. 작은 군이지만 참외 하나로 탄탄한 지역경제를 쌓아왔는데, 사드가 배치되면 모두 붕괴될 게 뻔합니다. 성주 군민들의 행복이 망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죠.”

성주는 사드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차돌멩이처럼 뭉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에서, 광주에서, 진주에서 전국 곳곳의 응원과 격려, 지지방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어떤 분들은 성주로 휴가를 오시더라. 낮에는 계곡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고 저녁이면 놓치지 않고 군청 앞에 촛불을 들고. 그런 장면들을 보고 듣고 나면 지칠 수가 없다”고 말을 이었다. 오전 몸싸움에도 지친 기색이 없는 이유가 하루하루 새로운 희망의 증거들을 마주한 탓.

사드 반대 투쟁 41일째인 지난 22일 취재진과 마주앉은 이재동 회장이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사드결사반대’가 적힌 머리띠를 꺼내 이마에 묶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제동 보다 이재동” 어느새 지역의 유명인사로

이재동 회장의 학교 후배인 방송인 김제동의 깜짝 등장도 성주촛불에 심지가 됐다. 하지만 성주에선 김제동 보다 이재동,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미 지역의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눈에 웃음기를 잃는 법이 없는 이 회장은 “촛불집회 사회를 보다 보니 알아봐주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조용히 밥값을 먼저 치르거나 밥값은 무슨 밥값이냐며 받지 않는 곳도 있어서 참…. 한약도 오고, 목에 좋은 약을 보내주시는 약사분들도 있습니다”라며 자랑 아닌 자랑도 늘어놓았다. ‘팔자에 없는 산삼’을 선물 받았다는 얘기엔 개구쟁이 소년으로 변했다. 인터뷰는 중간중간 ‘방해’ 받았다. 아침 기자회견 전쟁에 안부를 묻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탓이다. 고맙다, 고생한다, 성주군수가 누구 뜻이라고 기자회견을 하냐, 휴대전화기도 바쁘다.

경북 왜관에서 왔다고 밝힌 ‘외지인’ 모자는 “지나다가 얼굴을 보고 인사드리려고 왔다. 인터넷 TV에서 계속 보고 있다. 말씀도 재미있게 잘 하시더라”면서 인삼드링크 네 박스를 천막 아래 수줍게 내려놓는다.

달아오른 사드반대 물결 속에 이재동 회장의 걱정은 기획된 ‘분열’과 ‘갈등’이다. 평택 미군기지,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세월호 문제 등에서 보았던 양상 그대로가 성주에서도 재현되지 않을까. 아직은 잘 버텨 왔는데 도지사, 지역구 국회의원, 군수, 군의원. 군민 편에 서지 않는 그들이 근심덩어리다.

사드가 바꾼 일상, 참외 농사도 일찍 끝내

이재동 회장은 고향 성주에서 친환경농사를 지어온 농민이다.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대학 졸업하면서 일찌감치 농사 준비를 했다. 부모님 눈속임으로 다닌 대구 직장생활도 정리하고 성주에서 취업했다. 하지만 마음은 땅에 가 있던 그, 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민회 가입도 못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지금은 친환경 참외를 낸다. 환경보전을 하는 농업. 전국농민회총연맹 강령에 나와 있는 그대로 농사를 짓겠다는 철칙으로 땅을 갈아왔다. 이 회장은 회원들을 모아 ‘참살이공동체’를 조직하고 시행착오 끝에 친환경 농사에 정착해 온 누구보다 건실한 농민이다.

“참외 하우스 6동, 논 1,000평 농사를 지어요. 애들 키우고 살아가는 정도죠. 활동도 해야 하니 농사를 크게 할 수가 없어요. 성주군농민회 사무국장 6년 하고 (전농) 경북도연맹 사무처장 6년을 연이어 했어요. 한 사람이 밖에서 뛰니 한 사람은 집안을 거둘 수 밖에요. 아내 고생이 많았죠.”

내조의 힘은 농성장에서도 확인됐다. 인터뷰 중간에 차 한 대가 멈칫, 창문이 내려지는가 싶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도 거두고 지나갔다. 수십 분 후 다시 그 자리에 멈췄다. 이 회장의 부인이었다. 그제야 이 회장이 알아차리고 차로 다가갔다.

“괜찮냐고 묻네요. 오전에 공무원들에게 밀려나오는 게 인터넷에 전해져서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냐고 여기저기서 전화가 쇄도했다고. 일하러 가기 전에 들렀네.”

장기간 사드투쟁을 하느라 참외농사도 일찍 접었다. 윤작으로 참깨도 심어야 하는데 그것도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풀이 천지가 된 하우스, 친환경 농사라 제초제는 꿈도 꾸지 않지만 다음 농사를 이어가려면 풀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성주군청 앞마당이 하우스다.

성주에서 대대손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밝혀든 촛불이 오늘도 타오른다. 사드 철회 10만 서명인을 모으고, 상경투쟁을 하고, 908명이 삭발을 하는 성주에 다시 일상의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성주군청 앞마당서 팔뚝질을 하는 이재동 회장이 참외농사를 다시 시작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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