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초가집 짓기 ④] 상량식 하던 날

  • 입력 2016.08.26 09:15
  • 수정 2016.08.26 09:53
  • 기자명 이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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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다져진 주추자리에다 주춧돌을 묻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다.

말이야 쉽지만 그게 또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잘 가공된 대리석이 아니라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 그럴 듯한 돌을 주워다 주춧돌로 삼았기 때문에, 기둥이 닿는 표면이 매끈하고 평평할 리가 없다. 그 위에 기둥을 세워봤자 삐딱하게 기울 것은 당연지사. 고대광실을 짓는다면야 석수들을 동원해서 끌로 정으로 몇날며칠을 다듬어 평평하게 만들면 되겠지만, 인부들 밥해대기도 빠듯한 빈한한 초가집 쥔장한테는 먼 나라 얘기다.

“까짓것, 억지로래도 세워보드라고!”

목수의 지시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기둥을 운반해서 주춧돌 위에 올려 세운다. 사람들이 기둥을 수직이 되게 세워서 붙잡고 있는 사이, 목수는 주춧돌 표면과 기둥바닥 사이에 생긴 공간을 어림하여 표시를 한다. 기둥을 자빠뜨려서 그 ‘틈’만큼을 밑바닥에서 끌로 떨어낸다. 다시 세워보니 빈틈없이 맞물린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둥이 수직을 유지했다 하여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수평’의 문제다. 땅에 묻힌 주춧돌의 표면에 드러난 높낮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위에 올려 세운 기둥의 높이 또한 각각 다르다. 그 상태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납도리’를 올려 건너지르면 수평을 유지하지 못 하므로, 이번에는 기둥의 윗부분을 잘라내어서 수평을 맞춰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우는 기둥의 수가 열둘, 혹은 열여섯이나 되었으니 초가삼간이라고 그냥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가집의 뼈대를 만드는 작업의 정점은 집의 한가운데에 자리할 보를 올리는 일이다. 이것을 상량(上樑)이라 한다. 상량식이 있던 날, 엄니는 아침부터 친척들과 함께 끓이고 볶고 부치고 하느라 야단이었고, 아부지는 세무서의 ‘술 조사’를 피해 감춰두었던 술항아리를 삼촌과 함께 공사현장으로 운반하였다. 상량식은 목수의 노고를 위로하는, 목수들의 잔칫날이기도 했다.

걸게 차려진 음식상 앞에서 아부지가 먼저 절을 했다. 그 다음으로 삼촌이 하려고 고무신을 벗고 나섰는데 대장 목수가 나서서 말렸다.

“뭔 소리여? 가장이 절을 했으면 그 담으로는 이 집 장손이 해야제.”

대장 목수가 내 손을 잡더니 고사 상 앞으로 이끌었다. 종석이와 먹줄을 퉁기는 장난을 치다 들켰을 때 눈물이 나게 지청구를 할 때는 언제고…참, 별일이었다.

구경꾼이 많아서 좀 머쓱하기는 했지만, 까짓것 절이라면 설날 아침에도 하고 조부님 제삿날 저녁에도 해봤으니 못 할 것도 없었다. 물론 놀이터의 흙바닥에서 뒹굴고 나서 며칠째 씻지 않아 때꼽재기로 얼룩진 맨발을 사람들 앞에 내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좀 창피하긴 했지만.

나는 혹시 입고 있던 홑바지에 구멍이 나지는 않았는지 엉덩이 쪽을 한 번 만져보고 나서, 씩씩하게 덕석 위로 올라섰다.

“기냥 절만 하면 안 돼! 자, 요놈 갖고…”

아부지가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백 환짜리였다. 잠깐 사이에 점방의 눈깔사탕이며 풍선 따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세배할 때는 절을 하고 나서 돈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돈을 미리 주다니…. 나는 신이 나서 재빨리 주머니에 집어넣었는데,

“어어? 상량채 낼 돈을 호랑에 여뿔면 안 되제!”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아부지가 화급하게 나서서 내 주머니의 돈을 꺼내더니 고사 상에다 올려놓았다. 이게 뭔 놈의 재변이란 말인가!

나는 적장 앞에서 항복의 예를 갖춰야 하는 패전부대의 장수와 같은 기분으로 절을 하고는 서둘러 물러나왔다.

그날 해질 녘, 종석이와 둘이서 항아리 바닥에 조금 남은 막걸리를 몇 모금씩 나눠 마셨다. 나는 멀쩡했는데 문제는 종석이였다. 녀석은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서는 몸을 못 가누고 비틀거렸다. 조금 뒤 종석이 어머니가 달려오더니 기겁을 했다.

“아이고메, 큰일 나부렀네. 우리 종석이가 인자사 호녁(홍역)을 시작하는 모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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