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초가집 짓기 ③] 소나무가 넘어져서 기둥이 되다

  • 입력 2016.08.19 14:08
  • 수정 2016.08.19 14:2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초가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물론 나무다. 흙이야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고 지붕을 이을 볏짚이야 모자라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얻어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 산판이 없는 사람에게 집 지을 재목을 장만하기란 여간 힘에 겨운 일이 아니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베는 일은 보통은 집주인이 인부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하지만, 우리 집을 지을 때에는 내가 워낙 어렸기 때문에, 산에서 기둥감 등으로 쓰일 소나무를 직접 베는 모습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5학년 무렵에 큰집의 형들이 나무 베는 모습을 따라가서 구경한 적이 있었다.

요즘이야 기계톱이 있어서 어지간한 굵기의 나무 그거 베어 넘기는 데에 몇 분 걸리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기둥으로 쓰일 소나무 한 그루를 베자면 보리밥 한두 그릇 먹고서는 어림도 없을 만큼 힘겨운 노동이었다. 톱질이 빡빡해지면 형들은 깡통에서 석유가 묻은 헝겊을 수시로 꺼내 톱날에 바르고 나서 다시 톱질을 했다. 나무를 벨 때에도 요령이 있다. 한쪽에서 어지간히 톱질을 했다 싶으면 맞은편 쪽도 어느 정도 썰어줘야 넘어질 때 나무의 몸뚱이가 갈라져서 찢겨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나무 넘어간다아!”

그렇게 외치는 것은 구경꾼인 내 몫이었다. 물론 형들이 시켜서 내지른 소리였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넘어갈 때에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흡사 맹수나 괴물이 토해내는 단말마의 비명이 저런 것 아닐까, 싶은 소리가 계곡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래쪽에 있던 작은 나무 몇 그루가, 쓰러지는 소나무에 휩쓸려서 몸통이 부러지거나 혹은 통째로 자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 하니 괜히 가슴이 콩닥거리고 손바닥에 진땀이 났다.

나무가 넘어지면 가지를 쳐내고, 도끼로 거칠게 다듬은 다음, 한두 달 가량은 그 자리에서 말린다. 그래야 나뭇결이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운반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깊고 험한 산일수록 운반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여러 명의 장정들이 목도를 메고서 손수레나 우마차가 있는 평지까지 옮겨야 했으니.

집 지을 터가 있는 근방으로 나무가 옮겨지면 그때부터는 목수들이 쓰임새에 맞게 다듬는다. 물론 집터를 다듬고 다지는 일과 동시에 진행된다. 집짓는 일을 총지휘하는 상(上)목수, 즉 도편수가 조수격인 부편수를 데리고, 쓰임새에 따라 목재의 치수를 재서 연필로 표시를 한 다음 먹줄을 퉁긴다. 아직 목재의 표면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먹줄을 잘 못 퉁기면 금이 그어지지 않거나 두 줄 석 줄이 돼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 먹줄 한가운데를 한쪽 손으로 누른 다음 두 번에 나누어 퉁겨야 한다.

“먹줄을 제대로 놓을 줄 알면 목수 일 절반은 배운 셈이여.”

왕년의 베테랑 목수 김충의 노인의 증언이다. 요즘이야 정해진 치수에 따라 기계로 척척 제재를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나무를 직선으로 깎도록 길잡이를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먹줄이었던 것이다.

용도별로 치수를 측정하여 먹줄을 놓고 나면 그 먹줄을 따라서 도끼로 일단 거칠게 다듬고, 이어서 자귀를 가지고 좀 더 세밀하게 떨어낸 다음, 마지막으로 대패질로 마무리한다. 물론 초가집을 지을 땐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서로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맞물릴 자리에 홈을 파는 끌질 작업까지를 해야 목재 다듬는 일이 끝이 난다. 홈을 파는 끌질은 동네 남자들이 거들기도 했는데, 그 작업은 매우 만만하게 보였으므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까짓것 왼손으로 끌을 잡고 오른손에 든 망치로 두들겨서 홈을 파내면 될 터이므로 못 할 것도 없었다. 목수와 동네 사람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새참을 먹고 있는 사이 이때다, 싶어 다가가서 연장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끌을 대고 딱 두 번 망치질을 했을 때 동네 어른이 부리나케 달려와서는 연장을 빼앗았다.

“자, 시방 느그 엄니가 땔나무 갖고 오라고 안 하냐. 얼릉 요놈 갖다 드려라 잉.”

망태에다 대팻밥을 주섬주섬 넣어주면서 등을 떠밀었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