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초가집 짓기 ②] 주추자리가 단단해야 가세가 번창하지

  • 입력 2016.08.12 11:10
  • 수정 2016.08.12 11:12
  • 기자명 이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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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불도저니 포클레인이니 하는 갖가지 중장비가 갖춰진 요즘이라면 초가삼간 집터 다듬는 일쯤은 아마도 한두 시간이면 거뜬할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모든 것을 ‘사람의 힘’에 의존했으므로, 아무 네가 집을 짓는다 하면 동네 남자들은 적어도 이틀쯤은 집짓는 현장으로 울력을 나가야 했다. 하루는 터 다듬는 일에 일손을 보태야 하고, 또 하루는 지붕이나 벽채에 흙 바르는 일을 도와야 했다.

기둥으로 쓸 나무에 먹줄을 마구 그었다가 목수에게 혼쭐이 난 뒤로, 아부지로부터 현장 출입 금지령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 좋은 구경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집짓는 현장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온갖 연장들과 그것들의 쓰임새를 구경할 수 있는 학습장이기도 했다. 자귀니 끌이니 지렛대니 정 같은 연장들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집터를 다듬는 과정에 꽤 여러 개의 큰 돌을 파냈다. 무엇보다 땅속에 뿌리를 두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바윗돌을, 지렛대로 움직여서 파내는 모습은, 집체노동의 놀라운 힘을 실감하고도 남을 만한 장면이었다. 아래쪽을 파고 거기에 작은 돌을 괴어서 받침돌로 삼은 다음, 여럿이 힘을 모아 지렛대를 눌러 거대한 바위를 들썩이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힘점, 받침점, 작용점 따위의 원리를 애써 외울 필요가 없었다.

집터 다듬는 과정 중에서 지금도 기억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주추자리를 다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의 여섯 살 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 대목을 설명하자면 전문 목수의 조언이 필요하다. 십몇 년 전에, 평생 동안 남녘을 돌아다니면서 수십 채의 초가집을 지었다는 전라도 장흥 출신의 김충의 목수와 이중기 목수, 두 분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초가삼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집이 아니었다. 우선 주추자리가 몇 개냐에 따라서 집의 규모가 달라진다. 주추자리란 주춧돌을 놓을 자리, 곧 기둥을 세울 자리다.

“본시 초가삼간도, 제대로 짓어 놓으면, 앞뒤에서 보나 좌우에서 보나 지둥 니 개가 서 있어야 하는 벱이여.”

네 개의 기둥을 세워야 세 칸 집이 된다. 따라서 가로방향과 세로방향 모두 네 개의 기둥을 세워야 정사각형 모양의 넓은 방이 나온다. 하지만 형편이 빈한한 경우 초가집의 폭에 해당하는 세로 방향으로는 기둥을 세 개만 세운다. 기둥 폭 하나 만큼 방이 좁아진다. 전면과 측면 모두 네 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집을 ‘겹집’이라 하고, 세로 방향으로는 세 개만 세워 지은 집을 ‘홑집’이라 한다. 말하자면 겹집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세 칸이지만 홑집은 측면에서 보면 두 칸의 공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목수가 땅바닥 여기저기에 분필로 표시를 했다. 그 곳이 바로 기둥을 세울 자리, 즉 주추자리였다. 거기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려면 기반이 견고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땅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요즘이야 중장비를 이리저리 굴리고 다니면 그만이겠지만, 그 당시야 그런 게 없었으니, 사람들이 고무신 신은 발뒤축으로 쿵쿵 디뎌 밟아서 될 일도 아니고…. 목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기운 신 남자들이 큰 도팍을 샌나꾸로 묶어서 들었다 놨다 쿵쿵, 이렇게…”

맷돌만한 돌에다 대나무로 테를 두르고, 그 대나무테 여기저기에 새끼줄 여러 가닥을 묶은 다음, 여러 남정네가 새끼줄 한 가닥씩을 나눠 잡고 당겼다 놓았다 하면…그 돌이 공중에 떴다가 땅에 떨어졌다 하면서 땅이 다져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를 했다.

이 집 좌형을 둘러보니(어럴럴 상사디여)/좌청룡 우백호라(어럴럴 상사디여)/아들을 낳으면 효자를 낳고(어럴럴 상사디여)/딸을 낳으면 열녀를 낳겠네(어럴럴 상사디여)/……

여섯 살 꼬마였던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오금을 옴찔옴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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