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여름손님

  • 입력 2016.08.12 11:09
  • 수정 2016.08.12 11:10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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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어릴 적 나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호랭이 물어갈 년’이었다. 하지만 어른들께선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여름에 찾아온 손님이라 하셨다. 손님이라면 그저 신기하고 좋았던 기억밖에 없던 어린 시절 나에겐 뜨거운 국물을 드시며 아이고 시원하다 하시던 말씀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말 중에 하나였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여름손님이란 걸 온몸으로 깨닫게 된 건 결혼 이후다. 결혼이라는 것이 아마 본격적으로 손님을 맞이할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농촌에서 여름은 손님맞이의 시기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지치고 힘들었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아든다. 시어머니, 누군가에겐 친정어머니의 몫이었던 손님맞이는 슬그머니 며느리의 몫으로 전환된다. 하물며 여우도 죽을 때 고향 쪽에 고개를 두고 죽는다는데 인간 본성이야말로 고향을 찾는 게 기본일 것임을 알기에 싫은 내색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평생 그리 살아오셨기에 만일 휴가시기에 집에 오지 않는 자식이 있으면 서운함을 이야기 하신다. “눈치라도 주었냐, 안 올 사람이 아닌데….”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손님이라는 말은 어찌 생겨났을까? 더운 날 끼니 대충 때우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첫 번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름뿐만 아니라 일 년 365일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이름이 부여된 순간부터 의무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가족들 먹는 상에 반찬 가짓수 하나라도 더 얹어내야 한다는 대한민국의 미덕은 어머니와 며느리에겐 늘 행복할 수는 없기에 여름손님을 통해 요새 흔히 쓰는 미러링 기법을 활용한 절묘한 언어인 듯하다.

호랑이보다 더 싫고 미우니 오지 말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는 사실을 아시라는 것이다. 왜 그런 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말이다. 해결방법을 함께 찾자는 이야기다.

농촌에서의 삶이 개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그 삶 자체가 공동체 안에서 공유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면 바꿔야만 하는 것 아닌가? 결혼 하자마자 한 집안의 며느리가 아니라 마을의 며느리 크고 작은 공동체의 며느리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공동체의 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누구의 각시 누구의 며느리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의 실현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지 상상해본다.

그저 밥하기 싫어서? 브래지어를 벗어 버리고 싶어서? 아니다.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길은 어렵고 복잡한 길이겠지만 누군가 길을 내고 그 길을 가는 이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길이 된다고 한다. 여성과 남성에게 부여된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고 평등한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농촌이 된다면 지금의 초고령화 된 사회, 젊은 여성들이 기피하는 1순위 농촌의 모습이 아닌 아이들이 뛰어놀고 젊은 여성농민이 호미 들고 들판을 거니는 모습이 일상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여성 며느리가 아닌 인간으로 함께 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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